‘철의 여인’ 대처에 관한 5가지 오해
입력 2013-04-09 05:23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에 대한 다섯 가지 오해를 보도했다.
①철의 여인은 절대 굽히지 않는다.
이는 거짓이다. 대처는 겉으로는 비타협적이라는 입장을 내세웠으나 이면으로는 협상과 타협에 힘쓰기도 했다. 1981년 탄광노조와 정면대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온건파 노조와 제휴했다. 아일랜드공화국군(IRA)과의 갈등에서도 겉으로는 강경책, 속으로는 유화책으로 대응했다. IRA의 단식투쟁을 냉혹하게 외면하여 10명이 굶어죽는 사태를 빚기도 했지만 1985년에는 이들과 타협하여 영국 정부 최초로 ‘북아일랜드 협정’을 맺었다.
②대처는 고지식하고 촌스럽고 도덕적이다.
모두 진실은 아니다. 많은 동료들이 그녀에게 유머 감각이 있었다고 전한다. 영국 총리 관저인 ‘다우닝 10번가’에 술에 취해 나타난 적도 있었다. 그는 성큼성큼 나타나 신발을 벗어던지며 “젠틀맨들이여, 문제를 당장 해결 합시다”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③대처는 유럽 공동체에 반대했다.
그렇다. 그는 유럽 연합(EU) 강화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독특한 점은 대처의 경력에서 읽을 수 있다. 대처는 1975년 영국이 유럽 공동시장에 남을지 여부를 결정하는 총투표에서 ‘예스 투표’ 운동을 벌였다. 다만 대처는 신자유주의자답게 공동시장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했지만, 영국이 당시 유럽공동체에 가입하면 득보다 실이 많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반유럽’ 정책을 취했고, 이는 다른 유럽 국가들의 반발과 보복을 불러왔다.
④대처가 권력을 장악하면 누구도 영국에 간섭할 수 없다.
대처가 있는 한 누구도 영국을 건드릴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1986년 리비아 폭격을 위해 미군 폭격기의 영국 공격기지 사용을 허가하면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에게 ‘피의 보복’ 위협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노선은 ‘미국의 푸들’이라는 조소를 받았다.
⑤대처리즘은 글로벌 재정 위기를 야기했다.
대처리즘은 가장 명과 암이 공존하는 개념이다. 대처리즘은 영국병을 국가 위기로 진단하고 국가 전체를 개혁 대상으로 삼으며, 노조와의 정면 승부를 통해 기업이 일하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는 취지다. 그러나 영국 성장률이 1990년 0.8%로 떨어지며 대처리즘에 대한 회의가 확산됐다. 그러나 영국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기초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