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살인적 중도 위약금’ 40% 줄인다
입력 2013-04-08 18:17 수정 2013-04-08 22:32
서울 석관동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52)씨는 요즘 잠을 설칠 때가 많다. 직장을 그만둔 뒤 편의점을 차렸지만 매출이 신통찮아서다. 김씨가 운영하는 편의점 인근에는 다른 브랜드의 편의점 2곳이 더 있다. 김씨는 “계약 때는 가맹본부 담당자가 월수익 500만원을 보장하겠다고 했는데 막상 운영을 해보니 집에 월 100만원을 가져가기도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그렇다고 장사를 그만둘 수도 없다. 계약을 해지하면 ‘위약금 폭탄’을 맞는다. 김씨는 “계약 후 5년 내에 문을 닫으면 위약금 3700만원에다 시설비, 인테리어 비용까지 합쳐 가맹본부에 물어야 할 돈이 6000만원”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서울 여의도동에 편의점을 차린 박모(41)씨는 하루에 17시간을 가게에서 보낸다.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 특성상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야 하지만 아내와 둘이서 일한다. 박씨는 “주·야간으로 아르바이트생 2명을 쓰면 한 달에 250만원이 나간다. 한 달에 250만원 수익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편의점주들은 24시간을 운영해야 하는데 본사에서 야간수당 지원도 없고, 인건비와 전기세 부담이 너무 크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서울 용산에서 2년째 편의점을 운영 중인 박모(54·여)씨는 “노후대책으로 편의점을 시작했는데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인건비조차 나오지 않는다”며 “편의점 하겠다는 사람 있으면 뜯어말리고 싶다”고 말했다.
국민일보가 둘러본 편의점들의 상황은 열악했다. 창업이 쉽고 괜찮은 수익이 보장된다는 말에 편의점을 차렸지만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가맹본부의 출혈경쟁 탓에 편의점들이 우후죽순 들어서 수익은 갈수록 줄어들지만 24시간을 운영하는 데 드는 인건비 등 고정비용이 만만치 않다. 매출이 떨어져 장사를 포기하려 해도 수천만원에 이르는 위약금 탓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영업할 수밖에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는 8일 편의점의 중도해지 위약금을 최대 40% 줄이는 방안을 이달 중 시행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편의점 모범거래기준을 반영해 250m 이내 신규 출점을 금지한 데 이은 2번째 대책인 셈이다. 위약금 개선방안은 기존에 최대 10개월치 로열티(매출액의 35%)를 위약금으로 내던 것을 최대 6개월치로 낮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정위의 대책이 가맹본부의 불공정행위를 조금 줄이는 정도일 뿐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공정위가 발표한 250m 이내 신규 출점 금지도 같은 브랜드에 한해서 적용되기 때문에 점주들 입장에선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다른 브랜드의 편의점들이 주변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신림동에서 CU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얼마 전 150m 이내에 세븐일레븐이 들어왔다”며 “이름만 다를 뿐 편의점이 또 하나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점주들은 탄력적인 24시간 운영제를 원하고 있다. 밤늦은 시간에 매출은 오르지 않는데 고정비용만 더 늘고 있는 탓이다. 방경수 편의점사업자협동조합 이사장은 “편의점 점주들의 어려운 사정을 반영해 24시간 운영제를 점주들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65대 35로 나누는 점주와 가맹본부의 수익구조를 개선하는 것이지만 이는 정부가 시장 가격에 개입하는 것”이라며 “가맹본부들이 점주가 장사가 잘돼야 장기적으로 자신들도 이익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박요진 박세환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