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利장사하다 4000억 빚더미… ‘재앙’ 부른 재향군인회

입력 2013-04-08 17:57 수정 2013-04-08 22:36


재향군인회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에서 고리대금 장사를 하다 수천억원대 손실을 입고 쪽박신세가 됐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검사 강남일)는 부실대출에 관여한 안모(55) 전 사업개발본부 주택부장 등 재향군인회 관계자와 시행사 임직원 5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다른 관련자 8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8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재향군인회는 부동산 경기가 활황이던 2004년 신규 수익모델을 찾겠다며 사업개발본부를 신설해 PF대출 사업을 시작했다. 7000억∼1조원대에 달하는 재향군인회 자산을 바탕으로 금융기관에서 6∼8%대 저리 신용대출을 받은 뒤 이를 시행사에 20% 선이자를 받고 빌려주는 방식이다. 저리로 빌린 자금을 고리로 빌려주는 ‘중매 대출’ 형식으로 12∼14% 포인트가량의 이자 차액을 얻을 심산이었다.

하지만 재향군인회는 시행사의 부실이나 사업성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대출에 나섰다가 낭패를 보게 됐다. 안 전 본부장 등은 평택 아웃렛 매장 시행사에 담보도 없이 150억원을 대출해 줬다. 안산 워터파크 사업장의 경우 시행사가 부도 경력이 있었음에도 서류 검증 없이 220억원을 빌려줬다. 안 전 본부장은 이들 시행사에 대출해준 대가로 5억원을 받기도 했다.

50억원이 투입된 태백의 한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장은 분양이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아 망했다. 그럼에도 재향군인회 측은 오히려 대출을 성사시킨 직원에게 인센티브까지 지급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재향군인회 내부적으로는 투자심의실무위원회, 수익사업심의위원회 등 기구가 있었다. 하지만 금융 사업에 대한 검토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로 위원회가 꾸려져 제대로 된 심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시행사 대표들은 재향군인회 간부의 처남이나 군 복무 시절 자신이 모셨던 인맥 등을 접촉해 대출을 따냈다.

시행사들은 재향군인회가 ‘눈먼’ 대출을 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조작된 서류를 제출하기도 했다. 부산과 경남 창원의 주상복합 신축사업장 시행사 대표 이모(53)씨는 시공사의 재무제표와 도급순위 등을 허위로 작성했고, 서울 을지로 사업장 시행사 대표 신모(65)씨는 사업부지 매수를 위한 지주동의서를 허위로 제출했지만 각각 430억원, 130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이들은 대출금 중 37억원을 자녀 해외 유학비 등 개인용도로 썼다.

2008년 금융위기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PF사업장 부실은 눈덩이처럼 커졌지만 재향군인회는 묶인 대출금을 회수하려고 시행사에 추가대출까지 해주면서 더욱 문제를 키웠다. 재향군인회는 검찰 수사가 이뤄진 10개 사업장에 애초 2415억원을 대출해줬지만 추가 대출로 총액이 6185억원까지 늘었다. 재향군인회는 이중 2217억원만 회수했다. 나머지 3968억원가량의 채권 중 상당수는 이미 회수 불능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재향군인회가 금융업을 하면서도 금융감독원의 감독을 받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