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조류인플루엔자
입력 2013-04-08 18:44
브루셀라병, 탄저병, 공수병(광견병), 변형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광우병), 조류인플루엔자(AI). 한번쯤 들어봤고, 잊을 만하면 나타나 우리 사회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질병들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증세가 무엇이고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도 유행한다는 이유만으로 크게 두려워한다.
이들 질병이 무서운 것은 동물과 사람이 동시에 감염되는 인수공통감염병(zoonosis)이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 친근하던 동물이 갑자기 사람에게 병을 옮긴다는 것이다. 개에게 물리면 걸리는 공수병이나 소에서 전염되는 브루셀라병처럼 백신이 개발돼 사망률이 극히 낮은 경우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치료제조차 없어 일단 걸리면 숨질 가능성이 높은 질병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AI는 닭, 오리가 옮기는 대표적인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쉽게 말하면 새가 걸리는 독감이지만 1997년 홍콩에서 사람이 감염된 사례가 확인되면서 악명을 떨치기 시작했다. 2008년까지 15개국에서 385명이 감염돼 243명이 숨졌다. 사망률이 63%에 달한다. 치료제는 있지만 바이러스 표면에 존재하는 단백질에 따라 변종이 135가지에 달해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
지난달 장쑤성, 안후이성, 저장성 등에서 시작된 AI로 중국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지금까지 21명이 감염됐고 사망자도 6명이나 나왔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소문에 근거한 공포심이다. 축산농가가 직격탄을 맞은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출장과 관광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에 중국국제항공, 남방항공, 동방항공의 주가가 10% 가까이 폭락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인터넷에서는 미국이 생화학 무기로 중국을 공격해 AI가 발생했다는 유언비어가 돌고 있고, 홍콩에서는 공원의 참새가 갑자기 많이 죽는다는 보도 때문에 혼란이 일기도 했다.
AI 청정국인 우리나라도 걱정은 많다. 검역 당국은 특별방역 대책을 마련해 비상근무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에게 감염된 사례가 없지만 경제적 피해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2008년 유행했던 AI로 243개 농가에서 닭과 오리 542만4000여 마리가 살처분됐고 1000만개가 넘는 계란이 폐기됐다. “날아가는 철새만 봐도 놀라 가슴이 뛴다”는 게 축산농민들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어떤 질병인지 정확히 알고 대응한다면 AI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현재 우리의 방역체계만 제대로 유지한다면 환절기에 잠시 유행하는 ‘독감’으로 끝낼 수 있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