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남혁상] 영변
입력 2013-04-07 19:08
대표적 서정시 ‘진달래꽃’의 배경은 평안북도 영변(寧邊)이다. 이 시는 천재시인 소월 김정식이 1922년 문예지 ‘개벽’에 발표했다. 이별의 슬픔을 역설적이면서 극적으로 표현해 20세기 한국의 명시로 꼽힌다. 민족 고유의 정서와 한을 절절하게 묘사했다는 평도 듣는다.
평북 남쪽에 위치한 영변은 평양에서 90㎞ 거리에 있다. 청천강 지류인 구룡강과 관서팔경(關西八景) 중 한 곳인 약산동대(藥山東臺)가 있어 예부터 전국에 그 이름이 자자했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는 시 구절처럼 영변은 약산, 약산은 또 진달래꽃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약초가 많이 나고 물도 좋다는 뜻의 약산은 산세가 험준한 것으로 유명하다. 동국여지승람은 약산의 험세가 동방에서 으뜸이라고 했다. 잦은 외침을 막기 위해 고구려 시대부터 약산을 둘러싸고 지어진 성은 철옹성(鐵甕城)으로 불린다. 성 모양이 항아리를 닮았고 쇠처럼 튼튼하다는 뜻이다.
사실 영변 약산은 해발 480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다. 하지만 약산 제일봉 큰 바위인 동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팔도 중 최고로 꼽힌다. 봄철이면 산을 뒤덮은 연분홍 진달래꽃이 푸른 구룡강과 어울려 장관을 이루고, 가을이면 붉은 단풍과 타는 듯한 노을이 그림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옛 문인들이 영변 약산을 단골 소재로 삼았던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국경의 밤’으로 유명한 파인 김동환도 약산을 노래했다. 그의 시 ‘약산동대’는 ‘내 맘은 하루에도 열두 번이나 영변에 약산동대 진달래 밭에 봄바람 가로타고 흘러가노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조선 중기 학자 이유태의 한시에는 ‘약산 바위는 천년을 지키고… 지는 해에 기대 나 홀로 서 있다’는 구절이 나온다.
영변 약산에 진달래꽃이 필 무렵이 돌아왔다. 그러나 진달래로 이름을 날리던 영변은 이제 살벌한 핵시설, 북한식 벼랑 끝 전술의 상징처럼 인식돼 버린 지 오래다.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한 원자로와 우라늄농축시설 부지로 변해버린 것이다. 과거 서정시의 단골 배경이던 곳이 요즘 소설엔 폭파 또는 공격 대상으로 자주 등장한다.
영변이 최근 다시 한반도 위기의 주요 소재로 떠올랐다. 북한이 6자회담 합의에 따라 불능화시켰던 5㎿ 흑연감속로를 재가동하기로 발표한 탓이다. 영변은 언제쯤이나 옛 문인들이 즐겨 노래했던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한반도 핵 위기를 해결하려는 당사국간 외교적 노력이 절실한 때다.
남혁상 차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