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정기] 소통과 불통
입력 2013-04-07 19:03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목도하는 재미있는 경험 중 하나는 학생들이 끼리끼리 앉으려 한다는 사실이다. 20개가 넘는 다양한 전공의 많은 학생들이 수강하는 대형 교양강좌나 수십 명이 듣는 전공강좌나 마찬가지다.
전공 성별 관계 동아리 선후배 친밀감 군대경험 지역 등등 유사한 요인에 따라 공간적으로 가깝게 앉는다. 필자가 의식적으로 호기심 매력 호감 인상 패션 장신구 독특함 직관, 그리고 가보지 못한 지역 등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잘 알지 못하는 학생 곁에 앉아 보라고 권해도 별무효과다.
이런 경향은 양의 동서에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서양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적으로 유사한 특성을 지닌 사람들끼리 공간을 공유한다.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끼고 소통이 원활하기 때문이다. 공간과 커뮤니케이션의 관계와 의미에 대해 선구적인 연구를 한 홀(Edward T Hall)은 타인과의 거리공간을 4가지로 분류했다(The Hidden Dimension, 1982).
국민과 대통령 간 거리 짧아야
친밀한 공간(0∼약 46㎝)은 가족, 친한 친구와 같이 매우 가까운 사이의 상대에게 허용하는 공간이다. 사적인 공간(약 46∼122㎝)은 상대의 신체를 터치하기는 어렵지만 좋아하는 사람이나 친구들이 안으로 들어오는 걸 허용하는 영역이다.
거래적 공간(약 122∼366㎝)은 그룹 미팅이나 비즈니스 미팅에서 활용되는 거리로 특별히 친한 관계가 아닌 사람들과 유지하는 거리다. 마지막으로 공적인 공간(약 366㎝∼보고 들을 수 있는 거리)은 처음 만나는 사람, 관계가 없는 사람, 공적인 일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유지하려는 거리감이다.
과학적인 연구가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한국인의 거리와 공간의 커뮤니케이션 감각은 매우 독특하다. 공간은 물론이고 음식문화에서도 타인과의 공유에 관대하다.
예를 들어 추운 겨울날 타인과 담요 밑으로 발을 뻗고 발가락의 터치와 온돌의 훈훈함을 함께 나누고, 반찬이나 찌개를 숟가락과 젓가락을 통해 공유함으로써 거리와 공간을 공유하고 인정과 배려의 문화를 키웠다. 그러나 물질 환경이 풍부해지고 사람들 간의 관계가 사무적으로 변함에 따라 전통적인 공유의 거리감과 공간감이 실종되고 있다.
특히 개인적인 편리함과 공간 기능을 강조하는 아파트 생활이 보편화되면서 자기중심의 배타적인 공간감이 증폭되었다. 공간 공유의 심성이 약화되면서 가족공동체에 필요한 물리적·심리적 커뮤니케이션도 위기를 맞고, 사회공동체 생활에 토대가 되어온 예의와 정의 따뜻한 전통마저 고사하고 있다.
물리적·심리적 거리와 공간은 소통과 공감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통령과 국민들 사이의 거리와 공간도 예외가 아니다. 나라가 안녕하자면 국민들과 대통령 사이의 거리와 공간감이 멀어져서는 절대로 안 된다. 국가는 국민과의 거리가 사실상 제로(0)인 터치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는 소통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설득보다 진정한 사과가 필요
이런 점에서 지난달 30일 잇단 장·차관 후보자 낙마 소동에 대한 청와대의 대국민 사과는 터치와는 동떨어졌다. 별 설명도 개선 방안도 없는 17초의 달랑 두 줄짜리 대변인 대독은 소통을 위한 사과로서는 결격이었다.
사과는 잘못된 것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 대책이고, 뒤틀린 관계를 회복시키고, 사과하기 이전보다 더 나은 상태로 만드는 힘을 지녀야 한다(존 케이도의 저서 ‘한마디 사과가 백 마디 설득을 이긴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정성이 없는 사과는 소통이 아닌 불통의 그늘을 드리워 국민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뿐이다.
김정기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