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현미] 연희 목련 통신
입력 2013-04-07 19:02
목련이 피었다. 이곳에 근무한 지도 햇수로 5년. 그러니 저 목련 나무와 알고 지낸 지도 벌써 5년째다. 작가들에게 3개월 동안 집필실을 빌려주는 이곳 연희문학창작촌에 다녀간 작가만도 5년 동안 300명이 넘었다. 그 세월 동안 목련도 나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다시 봄을 맞이하고 있으니 새삼 눈물겹다.
겨울 동안 이곳에서 머무르고 있는 선배 작가가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아 궁금해 안부 전화를 했다가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디가 얼마나 아파서 병원에 입원까지 했는지 물었지만 선배는 이제 괜찮다고 병문안 같은 건 올 생각도 말라고 곧 퇴원할 거라고 퇴원하면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끝내 어느 병원인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평소 선배가 쓰는 소설의 주인공들이 슬픈 일을 당해도 울지 않고 오히려 큰소리로 웃으며 슬픔을 견디는 인물들이긴 하지만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아픈데 누군가 옆에 없다는 건 얼마나 아픈 일인가. 혼날 각오를 하고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라는 선배의 부탁을 못 들은 척 선배와 가깝게 지내는 몇몇 지인들에게 선배의 근황을 전했다. 퇴원하고 그 깔끔한 성격에 불같이 화를 낸다고 해도 할 수 없는 일, 옛 어르신들 말씀에 병은 널리 널리 알리라 하지 않았는가.
선배와 알고 지낸 세월도 벌써 15년째다. 그동안 옆에서 지켜본 선배는 누구 앞에서도 당당했고 어떤 권력이나 권위 앞에서도 아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또한 자신에게조차 철저하니 후배들은 그 앞에서 함부로 정신을 흐트러뜨릴 수가 없다. 다행히 퇴원한 선배는 5일간의 단식으로 기운이 좀 없어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들이 흠모하던 모습 그대로 예의 좌중을 휘어잡는 이야기꾼이 되어 우리들의 걱정과 근심을 일시에 날려버렸다.
물론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슬퍼도 울지 않고 웃으며 아픔을 견디고 있는 것이겠지만. 또 얼마 전에는 사무실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주말 동안 201호에 입주한 젊은 시인이 119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에 다녀왔다고 한다. 심장병이 있어 여러 차례 수술을 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내가 없는 동안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문자를 넣었더니 괜찮다고 한다. 신경 써줘서 고맙다고 한다.
목련이 피었다. 새 봄이 와서 꽃은 또 피었으나 지인들이 아프고 늙어간다. 새삼 눈물겹다. 죽지 않고 살아남자. 견디자. 우선 5년 만이라도.
안현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