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낙하산 인사 이후의 뻔한 수순 정말 지겹다

입력 2013-04-07 18:59

낙하산 인사 논란과 관련한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 내정자의 어제 해명은 구차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문성이 없는 낙하산 인사를 강도 높게 비판해왔고, 지난달 첫 국무회의에서는 “산하기관과 공공기관 인사에서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임명하도록 노력해 달라”고 했다. 홍 내정자는 박 대통령이 강조한 ‘국정철학’과 배치된다는 비판이 일자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홍 내정자는 2008년 저서에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금융산업 발전의 족쇄’라고 강하게 반대한 데 대해 “금산분리가 완전히 필요치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새 정부가 폐기한 산은 민영화 정책을 찬성했던 데 대해서는 “민영화 추진 당시에는 경제 및 시장여건이 민영화 추진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였지만 그 후 상황이 달라져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경제상황에 따라 정책추진의 속도조절을 주장할 수는 있지만 학자가 수십년 갖고 있는 소신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4대 금융천왕 자리가 탐나 새 정부의 ‘코드’에 맞추기로 한 것은 아닌가. 홍 내정자가 박 대통령과 같은 대학 동기이고, 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을 만들어냈던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이지만 전문성과 능력만 있다면 기관장을 맡을 수는 있다고 본다.

문제는 자산 192조원에 달하는 산은금융지주를 이끌어갈 능력이 있는가다. 홍 내정자는 금융실무 경험이 전무한 형편이다. 대학에서 국제금융과 거시경제를 가르치던 교수로 농협금융지주 사외이사 겸 이사회 의장 등을 거쳤을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주요 금융기관에 대한 새 정부의 태도다. 지난 정부는 산은금융지주에서 정책금융공사를 떼어내고 메가뱅크(초대형 금융기관)를 키우겠다며 민영화를 추진해왔으나 새 정부는 민영화 계획을 중단하고 정책금융기관 개편을 추진 중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새 정부는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을 물러나게 한 데 이어 이팔성 우리금융지주회장과 어윤대 KB금융지주회장 등 금융권 4대 천왕들의 퇴진을 압박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마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앉혀 금융을 좌지우지하고 싶은 유혹을 벗어나지 못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최근 “금융은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라며 “공익을 사유화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에게 돌려준다면서 이명박 정부 인사들을 대신해 자신의 사람들을 앉힌다면 이것은 낙하산이 아니고 무엇인가.

벌써부터 산은 노조는 낙하산 인사 출근 저지투쟁을 벌이겠다고 한다. 새 내정자 또한 노조를 달래기 위해 두둑한 당근책을 내밀 것이다. 그로 인해 부실이 늘면 국민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젠 관치금융과 낙하산 인사의 악순환을 정말 끊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