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1971년 일본에 센카쿠 양보 촉구”

입력 2013-04-07 18:30

미국이 1971년 일본에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둘러싸고 대만과 직접 협의하도록 양보를 촉구했던 사실이 미 공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6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당시 미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오키나와 반환협정을 체결하기 직전인 1971년 6월 영토문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던 일본 정부에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이는 미국이 센카쿠에 대한 일본의 ‘잠재주권’을 묵인하던 기존 방침을 사실상 수정한 것으로, 당시 미국은 섬유제품의 대미 수출을 규제하려던 대만과 관련 교섭의 조기타결을 추진하고 있었다. 닉슨의 사상 첫 중국 방문을 앞두고 이에 반발하던 대만을 회유하기 위함도 강조됐다.

특히 섬유 교섭과 관련, 백악관 보좌진이 닉슨에게 제출한 공문에는 교섭 대표단이 “대만과 예비적인 양해에 도달했다”고 밝히며 “심각한 쟁점이 남아 있다”고 보고한 내용이 등장한다. 미국이 중국과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는 ‘두 개의 중국’ 정책에 대해 “대만이 심한 처우를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부분과 “대만의 ‘체면’을 고려해 센카쿠의 ‘시정권(施政權)’을 일본에 반환하지 않는 현상유지가 현명하다”고 강조한 조언도 이어진다.

이에 대해 헨리 키신저 당시 대통령 보좌관은 미·일 관계의 악화를 우려하면서도 대통령에게 “섬유에서 진전을 꾀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사안”라고 설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윌리엄 로저스 당시 미 국무장관도 프랑스 파리에서 아이치 기이치(愛知揆一) 일본 외무상과 회담을 갖고 “(센카쿠) 영유권 문제를 오키나와 반환협정 조인 이전에 대만과 의논할 것”을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 국무부 공문에는 일본이 직접 협의에 나설 경우 대만 장제스(蔣介石) 초대 총통의 아들 장징궈(蔣經國) 행정원 부원장에게 연락해 “미국의 설득으로 일본이 양보하게 됐다는 점을 인식시켜 미국의 치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한 내용도 적혀 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시노부 다카시(信夫隆司) 니혼대 교수가 미 국립문서보관소(NARA) 등지에서 수집한 것으로 교도통신은 센카쿠 영유권에 대해 ‘당사자 간의 문제’라고 보는 미국의 센카쿠 정책이 형성된 배경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중국과 대만, 일본이 각자 영유권을 주장하는 현재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분석이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