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거물·러시아 검은돈, 탈세추문 확산… ‘버진아일랜드 파장’ 확산

입력 2013-04-07 18:29 수정 2013-04-07 23:08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입수한 조세피난처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의 재산 은닉자 명단이 연일 지구촌 곳곳의 관심을 끌고 있다. 워낙 방대한 분량인 데다 내부 문서에 적힌 검은돈의 주인이 차례로 새록새록 수면 위에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내부자거래를 저지른 혐의로 옥살이를 하고 있는 헤지펀드 거물 라즈 라자라트남(55)이 이곳에 재산을 은닉하고 있었다. 그가 2011년 저지른 6400만 달러 규모의 내부자거래 혐의는 미국 금융사기 역사상 최대 규모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유명 담보사기범 폴 빌저리안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스캔들에 연루된 적 있는 작곡가 데니스 리치는 1억4400만 달러의 재산을 조세피난처에 숨겨놓고 있다는 새로운 의혹에 휩싸였다. 브리지트 바르도의 전 남편 군터 작스 역시 버진아일랜드와 쿡제도에 막대한 재산을 은닉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독일 매체 쥐드도이체 차이퉁이 전했다.

조세피난처와 러시아 부패인사들의 검은돈이 연루된 정황도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WP는 커먼웰스트러스트(CTL)의 기록을 통해 최소 23개 회사가 러시아에서 2억3000만 달러의 탈세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고위인사들의 실명이 거론될 경우 ‘세르게이 마그니츠키 법’으로 아동 입양을 둘러싼 갈등을 빚은 미국과 러시아 사이가 다시 냉각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날에는 비드지나 이바니슈빌리 조지아 총리를 비롯해 2008년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의 아들 미르잔 빈 마하티르 등 전 세계 여러 유명 인사들의 이름이 추가 공개된 바 있다. ‘명단’에 대한 공포와 관심은 시일이 흐를수록 커지는 상태다.

대규모 탈세를 가능케 한 ‘역외 서비스’ 업체들에도 눈길이 쏠린다. CTL은 각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세피난처에 대한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대행하고 있다. CTL이 직접 탈세에 관여했다는 증거는 없으나 이들이 우연히 혹은 의도적으로 고객 관리에 소홀했다는 의혹은 짙게 일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비슷한 역할을 하는 업체인 ‘포트컬리스트러스트넷’은 서류상 업체를 내세워 실소유주를 감추고 차명으로 국외 계좌를 개설토록 하는 등의 업무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워싱턴DC의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는 약 250만개의 전자문서 형태로 담긴 BVI 문서를 분석, WP 가디언 르몽드 등 세계 언론사 33곳과 함께 문서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문서에는 지난 10여년간의 금융거래 내역이 담겨 있다. 문서에는 12만개의 회사와 이에 관련된 13만명 가까운 사람의 이름이 수록돼 있어 앞으로 드러날 파장도 만만치 않을 예정이다.

ICIJ는 지난 5일 홈페이지에 ‘우리가 정부 기관들에 역외 재산은닉 관련 문서를 넘기지 않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국 등 각국 정부기관이 자료를 요청했지만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