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직·알바의 그늘] 어제도 오늘도 공쳤다… 일감 끊긴 사람들

입력 2013-04-07 17:59


서울 봉천동 K인력사무소 르포

“오늘은 이제 ‘오다(인력 요청)’가 없으니까, 그만 돌아들 가요.”

7일 오전 6시30분. 서울 봉천동 K인력사무소에서는 더 이상 일당잡부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지 않았다. “오늘도 ‘데마찌(てまち·일거리가 없어서 현장 작업을 할 수 없음)’가 났구먼.” 10평 남짓한 사무실에 접이의자를 놓고 기다리던 남자 7명이 체념한 얼굴로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꼭두새벽부터 인력사무소에 나와 2시간 가까이 일당벌이 일감을 얻으려 했던 이들이었다.

“날씨도 좋은데, 사흘째 허탕이네. 아직 쓸 만한 몸인데.” 애꿎은 담배를 피우며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던 A씨는 숫제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사 들고 다시 들어왔다. 혹시 모를 오후 반나절 일감이라도 기다릴 심산이었다. 미안한 얼굴로 A씨를 바라보던 사무소장이 서랍에서 ‘일당잡부’라고 적힌 광고 스티커 뭉치를 꺼냈다. “이거 다 붙이고 오면 ‘데모도(てもと·허드렛일 조수)’ 값은 쳐줄게. 아침부터 술 먹지 말고.”

사무소장은 “15명 와서 8명이 일을 나갔으면 일요일 치곤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이 사무소는 현장청소·삽질·흙리어카 운반 등 ‘일당잡부’ 일에 9만원, ‘곰빵(흙·모래·자갈·시멘트·벽돌·대리석 운반을 가리키는 건설현장 은어)’ 일에 10만원을 제시해 인력을 모은다. 인력사무소가 떼는 소개 수수료는 10%다.

사무소장은 “한때는 인근 원룸 신축현장들에만 매일 30명이 넘는 인력을 댔었다”고 말했다. 공사현장이 인력을 모시기에 바쁘던 시절이었다. 저녁까지만 고생하면 거금을 번다는 입소문에 대학생들도 많이 찾아왔다. 막노동 경험이 없는 젊은이도 할 수 있는 허드렛일이 많았다.

하지만 한때였다. 2009년 159조2000억원이던 국내 건축·토목 건설투자액은 2010년 153조4000억원, 2011년 145조7000억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얼어붙은 건설경기는 인력사무소에 가장 먼저 찾아왔다. 새벽마다 미안한 얼굴로 사람들을 돌려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어쩌다 인력사무소로 걸려오는 전화는 경험·기술이 필요한 미장·할석(돌 마름질 작업) 기술자를 찾는 문의였다. 일감이 끊어지자 인력사무소를 찾는 일용직 근로자의 발길도 줄어들었다. 소개 수수료 수입이 줄어들며 문을 닫는 인력사무소도 생겨났다.

사무소장은 차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던 A씨에게 건넨 광고 스티커가 무용지물일 것이라고 말했다. 스티커를 보고 찾아오더라도 근로자나 인력사무소나 허탕을 치기 일쑤다. 그는 “많은 일감을 유치하고, 적은 돈이나마 챙겨가게 하려면 일당을 낮춰야 하나…”라고 혼잣말을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