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의 페스탈로치’ 김경식 선교사 “무지가 가난·장애 불렀다”… 교육사역 헌신
입력 2013-04-07 17:51 수정 2013-04-07 20:01
22년 전 아프리카 빈민가에서 장애인들에게 ‘떡과 복음’을 전하던 33세 선교사는 이제 현지에서 약 1만명의 학생이 다니는 초·중·고·대학교의 설립자가 되어 있었다. 페스탈로치(1746∼1827)가 ‘근대 교육의 아버지’라면 그는 ‘콩고의 페스탈로치’다.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 기독교복음선교회 회장 김경식(55) 선교사 얘기다. 선교 업무 차 일시 귀국한 김 선교사를 지난 6일 만났다.
“콩고는 지금 영적 전쟁터나 마찬가지예요.” 현재 콩고에서 ‘최고참’ 선교사로 활동 중인 그가 진단한 콩고의 선교 현실이다. “콩고에서의 선교활동은 다른 나라들보다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회교도와 이단 종교 단체들이 너무 많이 침투했어요. 선교의 기회이면서 위기라고 할 수 있지요.”
1991년 콩고 수도 킨샤사에 도착한 김 선교사가 처음 시작한 일은 장애인 사역이었다. “계획했던 일은 아니었어요. 당시 킨샤사에는 군인 폭동과 내전 등으로 경제상황이 바닥을 기고 있었고, 거리마다 부랑아와 장애인들이 넘쳐났어요. 자연스럽게 그들 곁으로 향하게 됐지요.” 거의 매일 200∼300명을 대상으로 길가에서 빵을 나눠주고 설교하기를 2년 반. 하지만 그들의 삶에는 좀처럼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약을 줘도 글자를 모르니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모르고… ‘무지가 장애를 부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교육 사역에 뛰어든 결정적인 계기다.
1996년 9월. 그는 첫 번째 학교인 에스뽀아 학교(초·중·고)에 이어 2001년, 2007년에도 한 곳씩 지었다. 현재 3개 학교에는 5000여명이 다니고 있고, 졸업생도 1000명 정도 배출한 상태다. 2010년에는 종합대학인 레베렁킴 대학교를 설립, 4500명의 재학생이 배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교단과 한국교회의 기도, 후원이 큰 힘이 됐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김 선교사는 교육과 더불어 미디어 선교에도 꾸준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2002년 FM 방송에 이어 이듬해 콩고 정부 당국의 허가를 얻어 TV 방송국인 CEBS 대표로도 활동 중이다. 한국으로 치면 지상파 방송 격으로 보도와 교양, 예능에 이어 교육과 선교 프로그램까지 두루 다루고 있다.
“가시청권이 콩고 수도 킨샤사 인구인 1100만∼1200만명에 달해요. 선교 프로그램은 전체 방송물의 20% 정도 편성하고 있어요.” 콩고 정부는 교육 등에 대한 그의 공로를 높이 사 2005년 김 선교사에게 ‘국민공로훈장 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김 선교사는 콩고 땅에 첫 발을 디딘 이래 지금까지 바람 잘 날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내전과 폭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선교사의 사명을 지켜오고 있는 그에게 선교란 무엇일까.
“선교는 ‘인내하는 것’ 같아요.” 이제 막 선교사로 떠나는 후배들에게 꼭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조언 역시 같았다. “인내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열매를 주실 겁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