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3부)] 노인행복국가 獨, 2.4%의 기적

입력 2013-04-07 18:09


정옥 오토-박(66)씨는 남편 게하르트 오토(76)씨와 함께 지난해 12월 이집트에 2주간 여행을 다녀왔다. 일주일은 이집트 후르가다에서 해수욕을, 나머지는 나일강에서 유람선을 탔다. 오는 5월에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7월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을 계획 중이다. 겨울 스키여행은 연례행사다. 스위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측 알프스가 독일 알프스와 만나는 주크슈피체에서 2주간 스키를 탄다. 정옥씨는 “부자는 아니지만 일년에 2∼3차례 여행 떠날 정도의 여유는 있다”며 웃었다.

전북 김제 가난한 농가의 1남6녀 중 넷째딸로 태어나 ‘사순이’로 불렸다는 정옥씨. 오래 앓던 아버지가 9살 때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겨우 중학교를 마친 그녀는 파독 간호사가 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1970년 1월 29일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43년 뒤. 정옥씨는 한국을 떠날 때는 상상도 못한 노후를 이국 땅 베를린에서 즐기고 있었다. 부부 합산 4개의 연금 덕이다.

국립병원 간호사로 41년간 일하고 2011년 퇴직한 정옥씨는 공무원연금(346유로)과 국민연금(1114유로)을 합쳐 월 1460유로(약 211만원)의 연금을 받는다. 남편 게하르트씨에게도 연금은 두 개다. 고교 졸업 후 취직해 45년간 전기회사 엔지니어로 일한 그에게는 국민연금(1600유로)에 퇴직연금(1000유로)을 보태 월 2600유로(약 375만원)가 지급된다. 부부의 한 달 수입은 평균 4060유로(약 586만원). 기본 생활비 월 2000유로 안팎을 빼고도 절반은 고스란히 남는다.

독일 전체 생산인구 5110만명의 68.7%(3513만명, 2009년 기준)는 국민연금제도에 가입해 있다. 공무원, 자영업자, 농부 등을 위한 별도의 공제조합을 포함하면 공적 연금제도의 가입률은 93%까지 높아진다. 거의 대부분의 독일인이 공적 연금제도의 보장을 받는 셈이다. 이중 절반은 다시 퇴직연금(2007년 기준)에, 30% 안팎(2012년 기준)은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개인연금(리스터연금)에 중복가입해 있다.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으로 이어지는 3중의 보호막 아래에는 빈곤노인을 위한 별도의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최후 탈락자를 받아낸다. 독일 노인 100명 중 2명만이 가난한 노인빈곤율 2.4%는 이런 4중 보호막이 이뤄낸 기적이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5%이다.

물론 많이 돌려받는 만큼 일하는 세대의 부담은 큰 편이다. 독일인은 소득의 19.9%(가입자와 사용자가 50%씩 부담한다)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낸다. 근로자와 사용자가 4.5%씩 9%를 부담하는 한국의 두 배가 넘는다. 2007년 정옥씨의 월급명세서를 보면 월급 2912유로(약 420만원) 중 원천 징수된 연금보험료는 315유로(약 46만원). 의료보험료, 통일세 등을 제외하고 매달 정옥씨가 받은 월급은 1914유로(약 276만원)에 불과했다. 지난 2월 9일 베를린에서 만난 정옥씨는 “일할 때는 높은 보험료가 부담이 됐지만 퇴직 후 매달 보장된 연금 덕에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모른다”며 “우리 부부가 마음 편히 은퇴를 즐길 수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베를린=글·사진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