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3부)] 한스 브라운 獨 트리어대 교수에게 듣다
입력 2013-04-07 17:35 수정 2013-04-07 22:51
“복지, 갈등 최소화하려면 좋은 정치인 키워야”
독일 트리어대학 사회학과 한스 브라운(72) 교수는 노년복지를 연구하며 독일의 수발보험(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 설계를 돕기도 한 사회정책학 분야의 석학이다. 정재훈(50)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지난 2월 23일 트리어시(市) 자택에서 브라운 교수를 만나 한국 복지의 모델로 주목받는 독일 복지의 작동원리와 고민을 들었다.
<대담=정재훈 서울여대 교수>
-요즘 한국에서는 국민연금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기금 고갈이 예고되면서 젊은층은 많이 내고 돌려받지 못할까 걱정한다. 독일에서 연금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없는지.
“독일 연금은 한국과 달리, 현재 일하는 젊은층이 전 달에 낸 보험료를 바로 연금 수급자(노인층)에게 지급한다. 연금제는 일하는 젊은 세대가 은퇴한 노인을 부양하는 제도, 다시 말해 ‘사회적 효’를 실천하는 방식이다. 일할 사람이 많은 피라미드식 인구구조에서 이런 방식은 잘 작동했다. 하지만 고령화로 취업인구가 줄어들게 되면서 독일 젊은층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불안과 불만을 동시에 갖게 됐다. 이 때문에 독일에서도 기금을 적립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런 논의는 일단 자취를 감추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연금제의 관계는 무엇인가.
“미국 교수들 얘기를 들어보니 65세 정년퇴직할 때 생각했던 연금의 절반도 못 받게 됐다고 하더라. 금융회사가 파산하면서 기금이 축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퇴 후 일할 대학을 구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웃음). 세대 간 약속으로 운영되는 부과식이 기금을 쌓아놓고 운용하는 적립식보다 낫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됐다고 믿는다. 독일에도 노후에 대한 젊은 세대의 두려움이 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신뢰를 무너뜨릴 만큼 큰 불안은 아니다. 부과방식을 대체할 대안도 나타나지 않았고. 한국 젊은이들은 왜 불안해하는가. 정작 한국 사회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이런 거다.”
-왜 불안해한다고 생각하나.
“결국 신뢰하지 못해서 아니겠나. ‘체계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가족, 친지, 친구를 뛰어넘어 나와 관계없는 이웃, 사회 전체 시스템에 대한 신뢰이다. 이런 신뢰는 추상적이다. 국가는 친구처럼 눈으로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 국가가 나중에 내게 무엇을 해줄지 100% 확신하기는 어렵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정치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니콜라 사르코지 전임 대통령이 60세에서 62세로 올린 정년연령을 다시 60세로 환원했다. 최근에는 이걸 더 내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런 즉흥적인 널뛰기 정책은 신뢰를 훼손한다.”
-한국과 비교하면 독일인의 사회적 신뢰는 높은 편이다.
“사회적 시장경제 덕분이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능력껏 일하되 장애가 생기거나 늙고 병들더라도 열매를 공유하도록 하는 게 사회적 시장경제다. 사회적 시장경제에서도 기업은 실패한다. 대신 실패가 방치되지는 않는다. 기업은 실패하더라도, 실패한 기업의 노동자들은 삶을 이어가야 한다. 그게 ‘사회적’이라는 단어의 의미이다. 실업수당을 주고 재취업을 지원하고 자녀 교육비를 지원해준다. 전후 독일에서 노사갈등, 범죄 같은 사회적 불안이 크지 않았다면 이유는 사회적 시장경제이다. 독일이 유지해온 높은 사회적 평화의 비결이다.”
-현재 독일 사회가 맞닥뜨린 고민은 무엇인가.
“저출산·고령화는 도전과제이다. 독일에서는 취업연령이 양적으로 줄어들 뿐만 아니라 전문인력도 감소하고 있다. 질적 감소이다. 정규직이 줄어드는 시대에 사회적 시장경제 자체가 가진 한계도 있다. 독일은 정규직 취업자가 보험료를 내는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굴러간다. 정규직이 줄어든다는 것은 사회보험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뜻이다. 장기 실업자, 저임금 노동자, 비정규직들은 노후에도 가난할 가능성이 높다. 전통적 가족관계가 붕괴되면서 ‘신사회적 위험’도 증가한다. 평생 전업주부로 살았거나 시간제 근로를 하던 여성들이 이혼 후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복지제도 유년기인 한국에서는 계층, 세대 간 대립이 첨예하다.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적의 복지모델은.
“그 답을 안다면 100만 유로를 받고 한국 정부에 팔겠다(웃음). 미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에 따르면 남유럽은 사회적 신뢰도가 낮은 반면, 스칸디나비아 국가는 매우 높다. 독일은 그 둘의 중간 정도다. 신뢰 수준은 바로 복지의 발전 정도라고 생각해도 좋다. 북유럽이 제일 발달하고 다음이 독일, 남유럽 순이다. 그렇다면 신뢰를 획득할 방법은 무엇인가. 답은 정치에서 찾아야 한다. 한 사회가 제도를 받아들일 때 중요한 것은 제도 자체보다 그 결정을 믿고 따르도록 하는 정치적 과정이다. 과정이 합리적이고 일관성 있을 때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 한국에 어떤 복지모델이 맞을지는 나도 모른다. 대신 공공선을 위해 일하는 좋은 정치인을 많이 키우라.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정리=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