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에 예술 담으면 좋지만 음식이 돋보여야 제멋이죠”

입력 2013-04-07 17:15


“그릇에 예술 담으면 좋지만 음식이 돋보여야 제멋이죠”

그는 세 가지 직함을 갖고 있다. 굴지의 도자기 회사인 이도(李陶) 대표, 패션아웃렛 W몰을 운영하는 원신월드 회장, 그리고 도예가. 20년 넘게 생활도자기 외길을 걸어온 이윤신(55) 작가. 그에 대한 첫인상은 손에 물 한 방울도 묻히지 않을 것 같았다. 평소 언론 인터뷰에 잘 나서지 않는 그가 지난 4일 서울 가회동 복합문화공간 이도에서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5년 만에 갖는 개인전 때문이다.

“이윤신하면 공예가도 아니고 사업가도 아니고 애매모호한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저는 그릇을 만들 때가 가장 행복한, 그냥 작가입니다.” 생활도자기 1세대 작가에 속하는 그는 실용성을 강조한 그릇을 제작하면서 그동안 작가보다는 사업가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지인들로부터 “흙도 빚고 물레도 돌리고 직접 작업을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단다.

“경기도 안양과 여주, 서울 가산동 W몰 등 세 곳에 작업실을 두고 있어요. 아침 8시에 출근해서 필요한 결재를 마치면 대부분 시간을 작업에 매달려요. 디자인 아이디어를 내고 스케치를 하고 견본을 직접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내는 그릇이 아니라 물레를 돌려가며 손으로 일일이 빚어 구운 따스한 느낌의 수공예 작품을 내놓기 위해 눈코 뜰 새가 없다고 털어놨다.

대다수의 도예가는 자신이 만든 도자기를 ‘작품’이라고 하지만 이윤신은 당당하게 ‘제품’이라고 말한다. “작업의 컨셉트가 뭐냐”고 묻자 “그릇의 기능은 음식을 담는 것에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음식을 얼마나 먹음직스럽게, 식욕이 당기도록 하느냐가 그릇의 역할이죠. 지나치게 장식적이거나 화려하지 않고 그릇에 담기는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제 작업의 출발점이에요.”

홍익대 도예과를 나와 남편(원경환 홍익대 도예과 교수)과 1983년 일본 유학을 떠난 그는 라면집과 선술집에서도 도자기를 사용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국 도자기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생각으로 일본에서 큐레이터 자격증을 딴 뒤 86년 귀국했다. 이후 87∼8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하다 스테인리스나 플라스틱 일색이던 우리 식탁문화를 바꿔보고자 90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릇 만들기에 뛰어들었다.

도예의 대중화를 위해 4년 전 가회동에 건립한 이도의 리뉴얼 오픈에 맞춰 10일부터 30일까지 ‘살롱 드 이윤신’이라는 타이틀로 전시를 연다. 푸른 유약으로 은은하게 색을 낸 ‘청연’, 하늘빛으로 봄의 정서를 한껏 뽐낸 ‘윤빛’ 시리즈 등 400여점을 내놓는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셰프 장조지(57)가 진행한 미국 공영방송 PBS의 한식 다큐 ‘김치 크로니클’(2011)에 나왔던 이도의 그릇들도 소개된다.

1984년 첫 개인전 이후 30년 작업을 되돌아보는 전시이기도 하다. 그는 “도예계에서는 나를 ‘그릇 만들어 파는 사람’ 정도로 인식하지만 사실 도예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실용성에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도자기도 예전에는 생활용기였다”고 말했다. 이도를 국제적인 브랜드로 키우는 게 꿈이라는 그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주방에 우리 제품이 놓일 때까지 그릇 만들기는 계속된다”고 포부를 밝혔다(02-722-0756).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