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운식 (6) 서울항공의 소명 “지구촌 선교사들의 날개 돼라”
입력 2013-04-07 17:11
서울항공은 창업부터 항공 업무에 특화된 회사이기도 했지만, 선교사 시장에 특화된 여행사이기도 하다. 회사가 선교사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지만, 어쩌면 한국 복음화를 위해 이 땅을 찾은 선교사들이 서울항공을 키워줬다고도 말할 수 있다.
당시 한국에는 많은 선교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서울을 비롯 전국 방방곡곡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가톨릭 계통으로는 메리놀 신부회와 수녀회, 콜롬반 신부회와 수녀회가 각각 활동했다. 개신교에서는 장로교와 감리교, 침례교 등 다수의 선교회가 전국에서 선교활동에 전념하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복음화되고 교회가 성장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게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수많은 선교사들이 뿌린 눈물과 땀의 씨앗들 덕분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수많은 선교사가 한국을 찾았고 또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서울항공은 이들의 발이 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수소문 끝에 네덜란드 항공사 KLM이 선교사를 위해 제공하는 특별요금을 발견, 한국에서 제공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항공사의 선교사 특별요금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각 선교회와의 인연을 유지하게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렇게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하루는 신부복을 입은 고객 한 분이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가 난 얼굴로 회사를 나가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다. 나는 직감적으로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무조건 따라 나섰다. 하지만 이미 그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간 뒤였다. 허겁지겁 계단을 통해 1층 현관 밖으로 뛰어 나가 무조건 사과부터 했다. 이 고객은 콜롬반 신부회의 재무담당 신부였는데 직원의 실수로 예약이 잘못된 것 같았다. 회사의 큰 거래선이 떨어져 나갈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사건 당일 신부의 마음을 돌리지 못해 몇 차례나 다시 찾아가 용서를 구한 끝에 콜롬반 신부회의 여행 업무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선교사들의 여행 업무를 도우면서 귀중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 가운데 한 분이 침례교 선교회 대표였던 보즈만 목사다. 언젠가 나는 심한 몸살이 나서 집에서 쉬고 있는데 뜻하지 않게 보즈만 목사가 문병을 와 기도를 해 주었다. 보즈만 목사는 유창한 우리말로 “정 집사님, 빨리 쾌유하시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며 위로와 격려를 전했다. 선교단체의 대표인 외국인 목회자가 여행사 사장을 직접 찾아와 기도해 주었다는 사실에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어떻게 전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나는 보즈만 목사의 방문과 기도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메리놀 신부회의 재무담당 오닐 신부와는 의형제를 맺기도 했다. 오닐 신부는 한국어를 조금 했지만, 우리는 늘 영어로 대화했다. 오닐 신부는 내가 영어 발음을 실수한 것을 가지고 10년 가까이 농담을 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때로는 형처럼, 때로는 성직자처럼 나에게 위로와 깨달음을 준 오닐 신부가 나는 늘 그립다.
국내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여행 업무를 도맡아 하면서 서울항공은 한국 여행업계에서 착실히 기반을 다져나갔다. 한편으로는 주한 외국계 회사들과 외국인 투자기업들로도 거래선을 확대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늘 그렇듯 하나님은 내게 도전할 과제와 섬겨야 할 대상을 동시에 주셨다. 일을 할 당시에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사용하시기 위해 항상 좋은 사람들을 붙여 주셨던 것 같다.
정리=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