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르완다 김보혜 선교사] (4) 구제사업으로 자라는 희망
입력 2013-04-07 17:02
염소 분양받은 청년 “하나님 사랑으로 부모님 원수 용서”
아프리카 대다수 나라가 겪는 빈곤의 원인은 무엇일까? 서구 열강에 의한 오랜 식민 착취, 종족 간의 분쟁, 에이즈와 말라리아를 비롯한 각종 질병 등 다양한 원인이 있겠다. 하지만 동아프리카 나라들의 빈곤에는 비교적 자연 환경이 좋아서 미래를 예측하고, 예비하는 개념이 희박한 탓도 있는 것 같다.
가난한 시절의 겨울은 가혹한 시련이지만 생존을 위해 혹독한 환경을 극복하고, 양식을 저장할 각종 도구와 장치들을 개발하고, 그런 시도들은 각종 산업 발전으로 연계되니 성장의 도약대가 되기도 한다. 르완다는 사철 들판이 푸른 나라이다 보니 비가 오면 씨앗을 뿌려 필요한 만큼 항상 거두니 저장을 할 이유가 없고, 또 단위 면적당 생산성을 높이려는 수고도 필요 없었던 것 같다.
겨우살이 채비가 없으니 당연히 저장, 저축 개념이 희박하다. 내일도 여전히 오늘처럼 소출이 있을 테니 당장 있으면 먹고 써 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미래 혹은 내일’은 그냥 천국일 뿐이다. 그러니 하루살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늘과 천국 사이의 날들에 대한 의식을 만드는 일은 참 어려운 과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고 학비 부담을 알기 전에는 늘 그렇게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말고의 편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이곳에 도착한 이튿날 새벽 5시부터 나는 초면의 사람들에게 편지를 받는 일에 익숙해졌다. 길, 교회, 어디서든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반가워하며 내미는 봉투에는 약속이나 한 듯 ‘나는 공부를 잘하는데, 혹은 우리 애가 공부를 잘하는데 학교를 못 가고 있으니 학비를 후원해 달라’ ‘우리 가족이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후원해 달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런 요청에 익숙하지 않았던 터라 심적 부담이 컸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받으면 좋고, 아니면 본전’ 식의 구걸이었다. 그런데 내전 이전에는 그러지 않았단다. 내전 후 참혹한 상황을 접한 외국인들이 선뜻선뜻 도와줬던가 보다. 그러니 너나없이 부끄러운 기색 없이 구걸의 손을 당당히 내밀 테지? 이래서 도움을 주는 일에 지혜가 필요해서 ‘하나님, 줄 때와 멈출 때를 알게 해 주세요’라고 간구할 수밖에 없다.
이 나라에서 인기 있는 동물은 킹콩으로 알려진 마운틴고릴라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곳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소다. 이곳 소는 뿔이 매우 크고, 전통 춤사위도 소뿔을 형상화했다고 하는데 농사일에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그저 소유할 뿐인 점이 특이하다. 현재도 여전히 청년이 결혼을 하려면 혼수로 소값을 신부 집에 내야 하기에 모두가 소를 갖고자 한다. 그래서 누군가 후원을 받게 되면 소를 희망하지만 후원자의 비용 부담이 크고, 수혜자는 가축우리를 마련하는 데 부담이 돼 대부분 구제사업으로 시작하는 일이 염소 분양이다.
뿌리까지 먹어치우는 염소의 먹성 때문에 사막화의 주범으로 미움을 받는다지만 초록 동산 르완다에선 문제가 없어 보인다. 1800m 이상 되는 지역에서는 양들도 보이지만 가장 기르기 쉽고, 등록금을 내는 시기가 되면 가축 시장에 염소가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환금성이 좋은 것을 알 수 있다.
2008년 11월에 친구와 지인들의 후원으로 시작한 염소 분양은 이후 한 교회에서 전적으로 염소를 후원해 작년까지 1000여 마리의 염소를 내전 생존자, 장애학교, 고아, 빈곤 가정 등에 분양했다. 대다수는 수혜자들의 양식이 돼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겠지만, 그중 얼마는 분양할 때 ‘지금은 수혜자지만 첫 새끼를 다른 사람에게 주면 후원자가 되는 것’이라는 권고대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첫 새끼를 갚은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렇게 보급하는 염소는 아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된다. 노엘이의 콧잔등에는 항상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2008년 11월 키니냐 지역의 고아를 대상으로 처음 염소 분양을 할 때에 수혜자는 아니었지만, 도망친 염소를 찾아오는 일에 혁혁한(?) 공을 세워 여분의 염소를 주며 몇 학년인지 물었다. 학교를 너무 너무 다니고 싶어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기도를 안 들어주신다고 하소연을 했었다.
‘1, 2, 3, 4’와 ‘a, b, c, d’를 가르치다 지쳐 학습가능성이 없는 아이인 줄 알았는데, 후원자를 연결해 학교를 보내고 나니 5년째 학기마다 1등 성적표를 가져온다. 노엘이를 보면 처음 염소를 나누며 희망 염소라고 이름 붙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냐가타레의 농아학교 아이들은 염소를 분양할 때 비록 말은 못하지만 밝은 얼굴로 주변 기물들을 두드리며 환호했다. 다섯 살에 일어난 내전에 부모가 동네 이웃에게 살해되는 현장을 보고 겨우 구조되어 난민 캠프에서, 또 이리저리 힘겹게 살아내면서 이제 청년이 되어 눈도 아프고, 외로움도 있지만 자기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와서 염소를 나눠주니 ‘이게 바로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시는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한다. 그러니 자기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부모를 살해한 사람을 용서하겠노라”고 깜짝 놀랄 말을 했던 은데라의 애나타는 큰 감동을 줬다.
챠니카에서 처음 염소 분양을 하던 날 염소와 함께 성경과 학용품 등을 수제가방에 넣어 줬는데, 어느 무슬림 여인이 자기에게도 성경을 달라고 해서 그녀의 삶에도 예수님의 생명이 전해지기를 소망하며 전했던 일도 있다. 엘리사 시대의 생도의 아내처럼 처절한 가난 끝에 처음으로 소유해 보는 염소를 붙잡고 “커서 의사가 되어 엄마를 치료해 주겠다”던 아이를 보며 이런 것이 염소의 수와 비교되지 않는 성공이 아닌가 싶다.
2년 전 어느 날 ‘미셔너리, 여기 너무너무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데, 닭 좀 나눠 주소’라며 부탁했던 이늄바 장관. 닭을 분양하던 첫날 수혜자들과 통화해서 격려도 했다. 그녀는 닭을 1000마리쯤 분양했을 때 예수님께로 가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다. 그녀가 “이 골짜기까지 누군가 와서 염소를, 혹은 닭을 어떻게 나눠줄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보고 계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했던 말은 수혜자들의 마음속에 사랑과 희망의 씨앗으로 발아할 것이다.
수혜자 중에 처음에는 염소 고삐조차 무서워서 건드리지 못하는 여자아이도 있지만 대부분 강아지 돌보듯 잘 다룬다. 고아 가정에 분양된 염소 꼴을 먹이며 아이들은 “하나님이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며 찬양한다. 이들이 훗날 르완다의 다윗이 되기를, 닭과 염소가 주는 잠깐의 기쁨보다 함께 나눠 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지고 구원의 줄로 잡기를 소망한다.
나는 털 알레르기가 있는지, 벼룩 때문인지 아무리 약을 뿌려도 가려움증이 심하다. 다른 염소들과 섞일까봐 염소 등에 번호를 적고, 닭을 분양하고 돌아와서는 열흘은 피가 나도록 긁어댄다. 하지만 십자가도 참으신 주님을 생각하면 벼룩쯤 어디 낯을 들겠나?
이제는 차니카 염소 수혜자들의 구체적인 내일을 꿈꾸며 유치원 건축을 진행 중이다. 염소든, 닭이든, 유치원이든 내일로 가는 소망의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차니카 치역에서 염소 분양을 하던 첫날 솔밭에서 분양 행사를 하는데, 마치 훈련된 병사들의 열병식처럼 도열해 들어오는 염소들을 보며 승리의 행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을 위해 준비한 구호가 이런 상황에 딱 제격인 듯하다. “Ntiwihebe! Imana irikumwe nawe(포기하지 마오!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김보혜 선교사 (르완다 페파교단 협력 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