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상처 밖으로 드러낼때 아픔 치유… ‘힐링’ 뮤지컬 ‘아름다운 것들’ 출연하는 양희은

입력 2013-04-07 17:26


포크 가수이자 라디오 진행자 양희은(61)이 뮤지컬 배우로 관객을 만난다. 그의 음악으로 만들어진 주크박스 뮤지컬 ‘아름다운 것들’을 통해서다.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만난 그는 자신을 “내숭 없고 솔직한 60대 가수”라고 소개했다. “라디오는 TV와는 달리 눈가림이 가능하지 않은 매체다. 사연을 읽을 때 행간의 숨소리까지 들린다. 약간 멋있게 보이려고 덧칠하면 하루 이틀은 갈지 몰라도 곧 들통 난다. 노래도 그렇고 라디오 진행도 그렇고 난 꾸밈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 죽은 후 삶과 노래가 여일한(한결같은) 가수로 평가받고 싶다”고 속내를 밝혔다.

뮤지컬 ‘아름다운 것들’은 양희은의 장기인 라디오 특별공개방송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애청자들이 털어놓는 사연을 그가 무대에서 읽으면 그 사연이 드라마로 전환된다. 그는 “누구나 마음속에 상처 하나씩은 있다. 다른 사람의 사연을 들으면서 공감하고, 내 처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어깨동무를 한 것처럼 서로의 아픔을 토닥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혼자만 끙끙 앓던 문제를 밖으로 드러낼 때 아픔이 치유된다. 그래서 이 작품은 ‘힐링 뮤지컬’”이라고 소개했다.

각각의 사연이 드라마로 바뀌면서 ‘아침이슬’ ‘상록수’ ‘아름다운 것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등 양희은의 대표곡 20여곡이 흘러나온다. 이 중 10여곡은 양희은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다.

1971년 ‘아침이슬’로 데뷔했으니 어느덧 42년. 그는 “시간이 화살처럼 지나갔다”며 “데뷔 초에는 다음 곡은 ‘아침이슬’을 뛰어 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하기 힘든 숙제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42년의 세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은 뜻밖에도 노래를 안 하고 방송도 떠나 있었던 7년간이다. “미국에서 살림만 하던 7년이 있었다. 1991년 무렵, 미국에 놀러온 한 선배가 당시 준비 중이던 ‘아침이슬’ 기념 음반을 듣고 ‘그동안 노래공부 많이 했구나’ 하더라. 실은 계속 쉬었는데 말이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해야만 노래공부가 되는 건 아니구나.”

그는 가수가 안됐으면 개그우먼이 됐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어릴 적 별명이 ‘여자 구봉서’였다. 성대모사를 잘 해서 애들을 많이 웃겼다. 개그맨 전유성씨가 아직 늦지 않았다며 환갑에 데뷔하라고 대본도 써줬는데 다른 일로 바쁘다 보니 시간을 놓쳤다. 그래도 아직 그 꿈은 버리지 않고 있다”며 웃었다.

가장 행복한 시간을 묻자 곧바로 “매일 아침 목욕할 때”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매일 거르지 않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다. 바쁜 일정 중 어쩌다 한가한 시간이 나면 맛있는 된장찌개와 반찬을 만든다”며 “가사도우미 없이 집안일은 직접 다 한다”고 말했다.

양희은은 “가수는 족쇄 같은 것”이라고 했다. “예전에 나팔바지 입고 ‘개 혓바닥’ 같은 깃을 세우고 노래를 했는데 지금 그때 사진을 보고, 노래를 들으면 오그라들고 창피하다”는 것.

그는 “요즘 음반 산업이 너무 젊은 애들 위주의 노래로 돌아간다. 50∼60대를 위한 신곡은 없고, 있어도 별로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동안 부지런히 음반을 냈다. 그런데 아무도 듣지 않더라. 세상이 나에게 바라는 노래는 예전의 히트곡이지 요즘 나온 신곡이 아니더라”고 씁쓸해했다. 이어 “그럼에도 나는 계속 새 노래를 만들 것이다. 따끈한 보리차처럼 단맛은 없지만 추운 날 몸을 녹여줄 수 있는 그런 노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뮤지컬 ‘아름다운 것들’은 24일부터 6월 2일까지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올려진다(1544-1555).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