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살인’에 난도질당한 소녀, 고국마저 등 돌리고…
입력 2013-04-05 18:13
추운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우울한 눈동자의 여자는 유리창을 따라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붉고 푸른 꽃들이 수놓인 스카프가 여자의 얼굴을 가렸다.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스카프를 만지고 놓기를 반복하다 문을 열고 들어선 방문객을 힐끗 보았다. 스카프 속에서 여자가 희미하게 웃었다.
여자의 이름은 굴 미나. 파키스탄 출신의 열일곱 소녀다.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보호소에 사는 미나의 스카프를 후견인 아니사가 천천히 벗겨냈다. 깊게 베인 선들이 얼굴 곳곳을 가로질렀다. 도끼 자국이었다.
고통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신이 이 여자에게 조금은 더 가혹했는지 모른다. 미나는 12세에 할아버지뻘 되는 60세 남성과 결혼했다. 가족의 선택이었다. 남편이라 불리는 남자는 날마다 미나를 때렸다. 친정 식구들도 폭력을 방관하며 이렇게 말했다. “넌 남편 가문에 속한 소유물이다.” 몇 차례 독약을 삼켰지만 죽음도 뜻대로 되진 않았다.
5년간의 학대 끝에 미나는 지난해 11월 아프간 잘랄라바드로 도망쳤다. 미나 곁에는 또래의 파키스탄 남성이 있었다. 그들은 엄격한 이슬람 관습상 이것이 얼마나 치명적 범죄인지 알고 있었다. 며칠 뒤 친정 오빠가 도끼를 들고 찾아왔다. 오빠는 남자 친구를 죽이고 도끼로 미나의 얼굴과 머리를 15차례 내리찍었다. 미나가 죽은 줄 안 오빠는 파키스탄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고인 피 웅덩이 사이에서 미나는 발견됐다. 비명소리를 듣고 문을 연 행인은 미나를 병원에 데려왔고, 의료진은 생존 가망성이 없는 가운데 수술을 했다. 의사들이 처음 본 건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두개골 밖으로 튀어나온 뇌 조직, 도끼에 찍힌 뒷목, 고기 조각처럼 짓이겨진 얼굴…. 수술 후 미나는 기적처럼 살아났다.
미나는 지난 2월 미국과 아프간이 공동 설립한 단체 ‘아프가니스탄 여성을 위한 여성’이 마련한 보호소에 입주했다. 친정으로 가는 건 사형선고나 다름없기에 이곳에 머물 수밖에 없다. 파키스탄 당국은 그녀가 ‘부정한 일’을 저질렀다며 도움을 주지 않았다. 사실상 ‘명예살인’을 인정한 셈이다. 가족 구성원이 성폭행을 당하거나 부정한 일을 겪으면 가문의 명예를 위해 살인하는 관습이 명예살인이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거의 사라지고 있지만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 소수 국가에만 남아 있다. 대다수 피해자는 여성이다.
미나가 머무는 보호소도 언제까지 운영될지 알 수 없다. 2014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이 철군하게 되면 아프간의 여성 보호소 14곳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 여부도 불투명해진다고 CNN은 4일(현지시간) 전했다. “이곳에 와서도 몇 차례 죽으려 했지만 사람들이 날 혼자 있게 하지 않았어요. 거울을 볼 땐 늘 손으로 얼굴을 가려요. 제 자신이 부끄러우니까요.”
누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파키스탄의 명예살인 사망자는 2011년에만 720명(여성 605명, 남성 115명)에 이른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