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낙지 살인사건’ 2심 “증거부족” 무죄
입력 2013-04-05 18:12 수정 2013-04-05 02:00
이른바 ‘산낙지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김모(32)씨가 살인 혐의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문용선)는 5일 여자친구(당시 21세)를 살해한 뒤 산낙지를 먹다 질식사한 것처럼 속여 보험금을 타낸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씨의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살인 사건과 관련 없는 차량절도 등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결론이 뒤집힌 이유는 ‘증거 부족’ 때문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법의학자 등 전문가들은 ‘코와 입이 막혀 살해될 경우 저항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얼굴에 상처가 남게 된다’는 소견을 냈다”며 “피해자의 얼굴에 그런 흔적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저항을 전혀 못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21세의 건강한 여성이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의식을 상실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는 1심 재판부의 판단과는 정반대다. 1심 재판부는 “김씨의 주장처럼 낙지를 먹다 질식사했다면 격렬한 몸부림이 있어야 하는데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다”며 “이는 김씨가 만취한 피해자를 코와 입을 막아 살해했고, 피해자의 미약한 저항을 김씨가 압도적으로 제압했기 때문”이라고 판시했다. 결국 ‘질식의 흔적이 없다’는 같은 정황을 두 재판부가 다르게 판단한 셈이다.
피해자의 사망 원인은 다시 미궁에 빠졌다. 항소심 재판부도 사건 당시 경찰이나 유족 누구도 타살을 의심하지 않았던 점에 대해 아쉬워했다. 2010년 4월 19일 인천의 한 모텔에서 호흡곤란으로 쓰러진 후 16일 만에 숨진 피해자는 사고사로 처리돼 이틀 만에 부검 없이 화장됐다. 유족들은 피해자가 사망 한 달 전 생명보험에 가입했고, 보험 수익자가 김씨로 변경돼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 뒤늦게 재수사를 요구했다. 재판부는 “당시 여러 가지 검사가 이뤄졌다면 원인을 밝힐 수 있었겠지만 아무런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의 사망 원인을 법원도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낙지를 먹다 질식사한 것이라는 김씨의 주장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던 이유다.
김씨의 살인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재판부는 피해자의 사망보험금을 수령한 혐의(사기)에 대해서도 무죄로 판단했다. 김씨는 피해자가 숨진 뒤 약 석 달 만에 피해자가 가입한 생명보험금 2억51만원을 수령했다. 피해자의 유족들은 “초등학생이 봐도 살인이라고 인정하는 사건”이라며 “무죄판결에 수긍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