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번호 ‘간첩번호’ 비하… “왜 가입했냐” 문자도
입력 2013-04-05 18:12
북한 대남선전 사이트 ‘우리민족끼리’의 국내 회원 계정이 공개되자 일부 네티즌들이 이들의 신상정보를 파헤쳐 공개하고 퍼나르며 심각한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보수 성향 네티즌들은 이들의 회원계정 일련번호를 ‘죄수번호’ ‘간첩번호’라 부르며 비하 발언을 쏟아냈다.
국가정보원 홈페이지를 통해 이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신고하는가 하면 해당자의 휴대전화번호까지 입수해 ‘왜 가입했느냐’며 거친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명단에 포함된 이들의 위법 여부가 전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마녀사냥’ 수준의 ‘신상털기’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제 해커집단 ‘어나니머스(Anonymous)’가 4일 트위터(@YourAnonNewsKR)로 공개한 우리민족끼리 회원 계정 9001개에는 가입자의 이름, 성별, 이메일 주소와 생년월일까지 적혀 있다. 개인 비밀번호를 역추적할 수 있는 ‘16진수’ 암호 정보도 담겼다.
이를 토대로 신상털기가 벌어진 건 주로 ‘일간베스트’(일베)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다. 20∼30대 보수적 네티즌이 주로 모이는 이곳에서 4일 밤부터 5일 오후까지 전체 회원 계정 9001개 가운데 내국인으로 추정되는 2000여개를 파헤쳤다.
계정 명의자 이메일 주소로 구글 등에서 검색해 80명 가까운 이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고 퍼뜨렸다. 5일 이 사이트에 올라온 ‘우민끼(우리민족끼리) 회원으로 활동하는 남녘 사람들의 정체’란 글에는 이들의 이름, 직업, 소속 기관, 직함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네티즌들은 신상 공개에서 멈추지 않고 해당자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다. 네티즌들은 국정원 홈페이지에서 이들을 신고한 뒤 그 화면을 ‘인증용’으로 캡처해 게시판에 올리며 욕설을 퍼부었고, 명단에 거론된 이들을 ‘간첩’으로 단정하며 비난했다.
일베 네티즌들은 해킹된 우리민족끼리 전체 회원 명단 중 내국인 계정이 2130개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통합진보당 등 좌파 성향 단체 인사들의 계정이 많다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어나니머스의 활약으로 우리 주변에 간첩이 퍼져 있다는 걸 알게 됐다”거나 “어나니머스에 상을 줘야 한다”, “간첩 신상을 공개하는 게 무슨 죄인가” 등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이처럼 무분별한 신상털기는 심각한 인권침해일 뿐 아니라 악성 루머를 양산해 이념갈등만 부추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박창호 교수는 “북한의 계속된 도발 상황과 맞물려 있는 상황에서 가입자 신상이 모두 공개됐고, 내용과 상관없는 사생활까지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사실 확인도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우리 사회의 내부 갈등만 커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