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이주 아동들 “우리도 학교에 가고 싶어요”

입력 2013-04-05 18:02


서울에 사는 준수(가명·7)는 학교에 가고 싶었다. 동네 친구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며 학용품, 가방, 실내화주머니를 들고 와 자랑했다. 준수는 엄마에게 “나도 학교 보내 달라”고 졸랐지만 준수 집에는 취학통지서가 배달되지 않았다.

탄자니아에서 온 준수 엄마는 집 근처 학교에 찾아가 입학할 방법을 문의했다. 교사는 준수의 ‘외국인등록번호’부터 물었고, 엄마는 아무런 대답도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돈 벌러 한국에 온 엄마는 불법체류 상태다. 준수에겐 신분을 입증할 ‘번호’가 없다.

은혜(가명·17·여)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나이지리아 국적의 부모와 함께 줄곧 한국에서 17년을 살았다. 한국말이 모국어고 한국 아이들과 똑같이 사춘기를 겪었다. 중학교 졸업을 코앞에 둔 지난해 말 담임선생님은 은혜에게 “교육청과 교육부에 확인해봤는데 넌 고등학교에 갈 수 없겠다”고 했다. 역시 외국인등록번호가 문제였다. 부모가 불법체류자여서 은혜도 ‘번호’가 없다.

준수와 은혜 같은 불법체류자 자녀를 현행법은 ‘미등록 이주아동’이라고 부른다. 외국인 부모가 한국에 불법체류하며 아이를 낳거나 관광비자로 아이를 데리고 입국했다가 함께 불법체류자가 된 경우를 뜻한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불법체류자가 된 아이들. 한국에 살지만 거주자로 등록되지 않은 이들에게 한국 학교의 문턱은 너무 높았다.

준수와 은혜의 엄마는 지난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을 찾아 변호사들에게 사정을 털어놨다. 변호사가 확인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19조는 미등록 아동도 입국기록이나 주거기록이 있으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돼 있었다. 또 교육부의 ‘다문화 학생 학적관리 매뉴얼’에는 의무교육 과정이 아닌 고등학교도 은혜 같은 미등록 학생이 진학할 수 있다는 내부 지침에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런 규정은 강제력이 없어 취학 여부는 학교장 재량에 달려 있다. 변호사들은 준수와 은혜가 다녀야 할 학교에 직접 전화해 법규, 매뉴얼을 알려주며 설명하고 설득했다. 준수는 지난 1일부터, 은혜는 다음달부터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지만 이미 친구들과 달리 ‘입학거부’를 당했다는 상처가 깊게 자리잡은 뒤다. 교육 현장이 바뀌지 않는 한 준수는 중·고등학교 진학 때 두 번 더 이런 홍역을 치러야 한다.

준수와 은혜 같은 미등록 이주아동은 2만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의 기본적 교육권과 건강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지만 아직 제대로 된 법규가 마련되지 못했다. 2009년 ‘이주아동 청소년 권리 보장을 위한 시민행동’이 발족해 관련 법 제정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2010년 당시 한나라당 김동성 의원이 이주아동 권리보장 법안을 발의했지만 상정되지도 못한 채 폐기됐다.

올 들어 다시 12개 인권단체가 모여 이 아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감, 세이브더칠드런, 아시안프렌즈 등이 참여한 시민행동은 상반기 중 민주통합당 박영선 의원 등을 통해 이주아동 권리보장법을 국회에 발의키로 했다.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누리당 이자스민, 진보정의당 정진후 의원 주최로 ‘미등록 이주아동의 기본권 실태와 개선 방안 토론회’가 열린다.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는 “아이들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살아갈 나라를 고를 수도 없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타의에 의해 권리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이것이 사회가 그들을 책임져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