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방전도, 찬·반 논란] 노방전도, 그 부흥의 역사

입력 2013-04-05 17:22


한국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입교인이 되려고 할 때면 “당신은 다른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한 적이 있습니까”란 질문을 자주 받는다. 한국교회의 세례 교인이라면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해 귀한 신앙을 갖도록 한 경험들을 갖고 있다. 그만큼 한국교회의 복음화와 전도는 떼려야 뗄 수 없다.

한국연합선교회가 출간한 책 ‘비기독교 국가들에 대한 선교’에 따르면 초기 한국교회의 부흥과 발전의 원동력인 성경공부 모임 사경반에서는 ‘복음 전도일 약정서’를 작성했다. 기독교인들은 전도를 약정한 일수(日數)만큼 이 집 저 집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처음 두 곳의 지방 사경회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 나중에는 수십만의 복음 전도일이 약정되기도 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마을을 전도하기 위해 교회들이 힘을 합했다. 겨울에 15일 정도를 별도의 복음 전도일로 정해 협력 전도 사역을 펼치기도 했다.

지난 1월 ‘코리아 비전 투어’를 위해 방한한 하와이열방대학 총장인 로렌 커닝햄 목사는 “1971년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한국말로 된 전도지를 받지 않고는 다닐 수 없었다”고 한국의 뜨거운 전도 열기를 증언했다.

개개인의 선교활동도 적극적이었다. 수년 전만 해도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란 전도 문구를 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이 문구를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으로 썼던 사람은 최봉석 목사다. 본명보다 최권능 목사로 더 유명했던 최 목사는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전국에 74개 교회를 개척했다. 공개적으로 신사참배를 반대해 감옥에 수감돼서도 ‘예수 천당’을 외치며 옥중투쟁을 계속하다 75세에 순교했다. 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예수 천당’을 큰소리로 외치며 복음을 전하고 전도에 헌신했던 전도대장이었다.

‘맨발의 성자’로 불리던 고 최춘선 할아버지도 한국 전도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30년 동안 지하철 등을 누비며 걸인과 같은 모습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가득 한 종이를 온몸에 두르고 “우리 하나님은 자비로우십니다” “Why two korea”를 외쳤다. 더군다나 통일이 될 때까지 신발을 신지 않겠다며 추운 겨울에도 맨발로 다녔다. 겉으로 보이는 초라한 행색과 달리 최 할아버지는 일본 와세다대 출신에 5개 국어를 하는 지성인이었으며 사재를 털어 노숙인 등을 돕기도 했다. 일제 때는 독립운동을 하기도 한 그는 지금 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