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손영옥] 컬렉터를 위한 변명
입력 2013-04-05 18:26 수정 2013-04-05 20:17
이성락 가천대 명예총장. CEO급 미술애호가 1000여명을 회원으로 거느린 현대미술관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의 미술 애호 역사는 40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대 교수이던 1984년의 어느 날, 그는 서울 대학로 샘터화랑에 우연하게 들렀다. 손상기(1949∼1988)라는 생소한 화가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었다. 달동네 등 1980년대의 생활상을 그린 작품들은 하나같이 햇빛 한 줄기 스며들지 못하는 심해처럼 어둡고 절망스러웠다. 유독 황금빛 가을 풍경을 담은 그림 하나가 화사했다. 강한 끌림에 그는 이 그림을 샀다. 막 시장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화가의 그림은 비싸지 않았다. 나중에 이 명예총장은 손상기가 ‘한국의 로트렉’으로 불리는 곱추화가라는 것과, 자신이 산 그림은 화가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월세방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던, 생의 가장 찬란했던 시기에 그린 것임을 알게 됐다. 4년 후 화가는 작고했고 생존 때보다 더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
이 명예총장은 유명화가의 것은 비싸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갓 대학을 졸업한 신진들의 작품을 즐겨 샀는데, 세월이 흘러 유명한 중진작가가 된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컬렉터 50여명의 애장품이 세상에 나왔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14일까지 열리는 ‘나의 멋 나의 애장품’ 전시에서다. 이 명예총장도 손상기의 그 작품 ‘추(秋)-호숫가’를 내놨다. 얼마 전 전시 구경을 갔다가 도록에서나 보던 조선후기 화가 김홍도의 ‘선상관매도(船上觀梅圖)’를 실견하는 호강도 누렸다. 김용원 도서출판 삶과 꿈 대표의 소장품이다. 일부 컬렉터는 애장품은 내놓았지만 익명을 고집했다.
그럴 만도 했다. 컬렉터가 세간에 화제가 되는 건 대기업이 그림 거래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느니,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느니 등 비리의 측면에서 다뤄질 때가 대부분이니 말이다. 그림이나 사는 ‘팔자 좋은’ 사람들에 대한 세상의 질시도 있을 것이다.
신간 ‘장사의 시대’(어크로스)에서도 여러 부류의 세일즈맨을 인터뷰한 저자는 “미술상들은 미술품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판다”며 은근히 컬렉터를 조롱한다. 미술품은 감정과 안목, 지식과 경제 감각까지 갖추고 있음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에 일부러 부유층의 과시적 욕망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자. 그렇게 감정에 대한 안목과 경제 감각까지 갖추려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되고 그림에 대해 공부해야 하고 시대적 트렌드도 읽어야 한다. 여간한 노동이 아니다. 재력은 미술애호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익명으로 남기를 선호하는 미술애호 문화에 대해 화랑이나 경매사 관계자들은 색안경을 끼고 컬렉터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 문화를 질타했다. 하지만 스스로 당당하지 않았거나 응석을 부린 측면은 없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미술품 양도소득세는 1990년 정부에 의해 법제화됐으나 번번이 유예됐다. 마침내 23년 만에 올해부터 적용에 들어갔다.
지난 3월 중순, 양도세 도입 이후 처음으로 양대 미술품 경매 회사에서 경매가 이뤄졌다. 서울옥션의 경우 낙찰률은 70%로 지난해 같은 달의 77%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낙찰 금액도 48억원으로 1년 전 53억원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K옥션도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걸 감안하면 예상 밖의 열기다. 미술품 양도세 시행은 당당한 미술애호 문화를 가늠하는 척도다. 거래의 투명성으로 신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건 미술애호가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래서 의외로 나쁘지 않았던 경매 결과가 반갑다.
손영옥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