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요리예찬

입력 2013-04-04 20:23


요리하는 남자가 대세다. 허리에 앞치마 끈을 단정히 묶고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이며 조리대 앞에 서는 모습이 연장을 챙겨들고 작업대에 서는 것만큼 자연스럽다. 남자들끼리 나와 지지고 볶는 요리프로그램도 별로 신선할 것 없는 흔한 콘셉트이고, 아예 여자 친구를 위해 요리를 배우라고 TV 앞에 남자들을 불러 앉힌다. 누구의 환심을 사기 위해 프라이팬을 든 아들의 모습에 속 불편하신 어머니들도 계시겠지만 무자식상팔자인 입장에서는 보기 좋기만 하다.

친구의 초등학생 아들이 화이트데이에 여자 친구에게 줄 케이크를 만들겠다며 주방을 초토화시켰다고 한다. 샘도 나고 얄밉기도 하지만 혹시 잘못되어서 아들이 상처받을까봐 할 수 없이 도와줬다는 친구는 시중들기 귀찮다며 이참에 어린이 요리교실이라도 보낼까라고 한다. 투정하듯 흘린 말을 집어 들고 좋은 생각이라고 찬성표를 던졌다.

요리는 사람의 오감을 자극하고 발달시키는 좋은 교육법으로, 배우는 시기가 이를수록 창의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많은 재료를 만지고 먹어보면서 미각을 깨우고 정서를 안정시키고 편식을 고치기까지 한다는데, 21세기에 남녀유별을 따질 일인가.

초등학교 때 외갓집 부엌에서 할아버지로부터 처음 요리를 배웠다. 개성상인이셨던 할아버지는 고깃국이나 생선탕을 끓일 때 손수 장을 봐서 요리하곤 하셨는데 그때 유일하게 부엌 출입을 허락받은 가솔이 나였다. 할아버지 옆에서 대파를 조몰락거리며 생선 눈알이 탱글탱글하고 살이 탱탱하다는 게 어떤 것인지, 맛있는 소고깃국은 어떻게 만드는지 눈과 손으로 배웠다.

그리고 그 부엌에서 칼질하는 법을 배웠고, 김치부침개였던가, 처음 제 손으로 먹거리를 만들었다. 프라이팬에 얹은 반죽 앞에 앉아 뒤집을 순간을 기다리며 가장 맛있는 순간까지 순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 그것이 요리라는 것을 말이 아닌 맛으로 배웠다. 맛있게 먹는 모습, 맛있다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사람 마음을 꽉 채워주는지, 그 뿌듯함에 맛들여버렸다.

사람이 마음을 다해야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순리를 배울 수 있는 것이 요리다. 학원이 아닌 집에서, 가족들에게 배운다면 추억이라는 근사한 덤까지 얻을 수 있으니 이렇게 좋은 일을 어찌 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요리는 팍팍한 세상에서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좋은 일,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최고의 방법이다.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