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통위 영향력 강화] ‘열석발언권’ 방식 변경…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 논란
입력 2013-04-04 18:20
정부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열석발언권 행사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당·정·청이 잇달아 기준금리 인하 압력을 넣고 있는 상황에서 기준금리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도다. 오는 11일 열리는 금통위에서 정부의 열석발언권까지 강화될 경우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 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1차관은 4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실무 검토를 하고 있다”며 “다음주 초쯤 그와 관련돼 정리된 입장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도 “정부 위쪽(고위급)에서 열석발언권 행사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강화 방안으로는 열석발언권 행사 방식 변경이 우선 검토되고 있다. 현재는 금통위가 열리면 금통위 실장이 전날 동향보고회의를 요약해 보고한 뒤 기재부 차관이 열석발언권을 행사하고 퇴장한다. 이후 금통위원들이 금리를 결정한다. 정부는 기재부 차관이 처음부터 금통위원 금리 결정까지 지켜보고 맨 마지막에 발언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정부는 2010년 1월 열석발언권이 부활한 직후 기재부 차관이 회의에 끝까지 남는 방식을 택했었다. 하지만 같은 해 4월 김중수 한은 총재가 부임하면서 현재 방식으로 바꿨다. 기재부 차관이 금통위원 발언은 물론 표결 과정까지 지켜보는 것은 독립성을 훼손한다고 한은이 문제 제기를 했고, 정부가 이를 수용한 결과다.
그러나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정부 내부에서 현행 방식이 처음부터 끝까지 금통위를 지켜봐야 할 ‘열석(참석)’의 법률적 의미에 맞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열석 시점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없다”며 “그분(추경호 차관)이 계속 앉아계시면 쫓아낼 수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번도 실현되지 않았던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의 금통위 참석, 금통위 의결에 대한 기재부 장관의 재의 요구권 행사도 여러 가능성 중 하나로 검토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원론적 언급만으로도 한은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열석발언권 강화를 검토하는 것은 그만큼 기준금리 인하가 경기부양을 위해 시급하다고 인식하고 있어서다. 현 부총리와 추 차관 모두 열석발언권에 대한 애정도 깊다. 현 부총리는 지난달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새 정부의 열석발언권 행사를 공식화했다. 추 차관은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을 맡고 있던 2010년 1월에 “필요하면 금융위도 금통위에 참석해 발언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Key Word : 열석발언권
기획재정부 차관 또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참석(열석·列席)해 발언할 수 있는 권한. 한국은행법 91조에 규정돼 있다. 1997년 신설됐지만 사실상 사문화 상태였다가 2010년 1월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공조 강화 차원에서 부활됐다.
세종=이성규 기자, 강준구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