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육군 여자의용군 1기 이수덕 여사 “나라 구하는데 남녀가 따로 없었어요”
입력 2013-04-04 18:50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 여자, 남자가 따로 있었겠어요? 힘든 생활이었지만 여군들은 전투현장에서뿐 아니라 후방에서도 제 몫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육군 여자의용군 1기로 1950년 9월 1일 입대했던 이수덕(88) 할머니는 3일 서울 용산동 전쟁기념관에서 국민일보 기자와 만나 “당시 여군들은 모성애를 호국혼으로 바꿨다”며 “나라를 지키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고향인 황해도 연안읍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던 이 할머니는 전쟁이 터지자 갓 결혼한 남편과 남쪽으로 피난한 뒤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입대했다.
부산 육군본부에서 보급장교·정보장교로 근무한 그는 52년 여성으론 처음으로 인천지역부대 군수과장을 맡았고 이후 기술정보반장으로 북한군 보급상황을 조사하고 미군과 협조하는 일을 했다. 55년 11월 대위로 예편했다.
이 할머니는 “6·25전쟁은 여군 창설의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전쟁 중 육군 제2훈련소에 여자의용군 교육대가 창설된 게 본격적인 여군의 출발이다. 1기에 2000여명이 지원해 시험과 신체검사를 통해 500여명이 선발됐다. 3주간 훈련을 마치고 9월 26일 491명이 수료했다. 이 할머니는 “여군들은 정훈부대뿐 아니라 첩보대, 예술부대. 보급부대 등 곳곳에서 맹활약을 했다”고 말했다.
육군에 이어 해병대에서도 여군부대가 창설됐다. 50년 8월 해병대가 제주도에서 해병대원을 모집할 때 128명의 여성이 지원했다. 해병대는 모자라는 후방지원임무를 이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입대를 허용했다. 8월 31일 해병 4기생 3000여명은 입대식을 가진 뒤 부산에 있었던 해군본부와 진해 해군통제부에서 간호원, 홍보요원, 행정요원으로 활동했다. 공군에서는 49년 2월 15일 발족된 육군항공사령부 예하 ‘여자 항공교육대’가 같은 해 ‘여자항공대’로 명칭을 바꾼 뒤 2기생을 선발했으나 전쟁 발발로 교육이 중단됐다.
여학생들은 학도의용군으로도 참전했다. 18세로 강릉사범학교 1학년에 재학 중 제1군단 학도의용군에 지원했던 심규용 할머니는 행정요원으로 전투현장까지 갔으며, 이화여중 4학년이었던 김복희 할머니처럼 비밀결사대로 활동한 경우도 있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