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당국, 지하경제 전면전] 국세청, 대재산가 107명·고리사채 117명 세무조사
입력 2013-04-04 18:02 수정 2013-04-04 22:17
A씨는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꼼수’를 부렸다.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가 직접 수출하던 물품을 자녀 명의의 가짜회사 세 곳을 거쳐 우회 수출하도록 해 일감을 몰아줬다. 수출 대행수수료는 평균 수수료의 7배를 지급했다. 또 A씨는 자녀들에게 신주인수권부사채(신주를 인수할 권리가 있는 채권)를 저가에 넘긴 후 고가의 주식으로 바꾸도록 했다. 국세청은 A씨가 ‘일감 몰아주기’ 등의 방식으로 법인세와 증여세를 탈루했다고 판단하고 317억원을 추징했다.
국세청이 A씨처럼 각종 편법을 동원해 상속·증여를 해 온 재산가와 불법고리사채업자 뿌리 뽑기에 나섰다. 지하경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국세청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국세청은 4일 국내·역외탈세 대재산가 107명과 불법사채업자 117명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일부 대기업 사주까지 포함된 대재산가는 음성적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거나 증여한 51명, 조세피난처 등으로 재산을 빼돌린 역외탈세 혐의자 48명, 대규모 인터넷카페를 운영하며 세금을 피해온 8명이다.
우선 국세청은 편법 상속과 증여에 초점을 맞췄다. 위장계열사 설립을 통한 일감 몰아주기, 부당 내부거래나 특정채권 및 신종사채를 이용한 불법적 증여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조세피난처 등으로 돈을 빼돌리는 역외탈세도 주요 검증 대상이다. 임환수 국세청 조사국장은 “대재산가의 탈세는 전문가 도움을 받아 치밀하고 지능적으로 이뤄진다”며 “일정 규모 이상의 대재산가는 재산변동을 상시 중점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반사회적 탈세’로 규정한 불법 사채업자를 대상으로도 강력한 세무조사를 예고했다. 불법 사채가 탈세의 문제를 넘어 폭리·갈취 등으로 서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다는 판단이다.
또 광고비를 받고 홍보 후기를 작성하는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으로 돈을 벌면서 소득신고를 하지 않는 신종 탈세도 주목하고 있다. 주요포털 사이트의 최상위권 블로그·카페를 운영하는 이들은 후기를 써주고 건당 100만원 이상 거액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에 927명을 투입했다. 이미 지난 2월 20일 인사에서 세무조사 인력을 400여명 늘리고 조사팀 70개를 보강해뒀다. 지난달 4일부터 지방청 조사국 소속 1400명을 대상으로 금융조사·역외탈세 등 지하경제 추적을 위한 첨단 조사기법을 집중 교육하기도 했다. 국세청은 서울청 조사2국을 개인분야, 조사4국을 법인분야의 ‘지하경제 추적조사 전담조직’으로 별도 운영키로 했다.
대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해서는 세무조사 부담을 대폭 낮춘다. 자산가들을 압박하면서 서민에게까지 부담을 주면 국내 경제가 크게 위축될 수 있어서다. 임 국장은 “매출 100억원 이하인 43만개 중소기업, 소상공인, 일자리 창출 기업은 경제상황을 감안해 조사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유예할 것”이라며 “대형 법인과 대재산가에 조사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