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주요대 자유전공학부 폐지… 신입생들 “날벼락… 오리알 됐다” 분통
입력 2013-04-04 17:57
“수능 전과목 1등급 받고 입학했는데, 황당하고 억울합니다. 새내기들 중엔 벌써 ‘반수’에 들어간 친구들도 많아요.”(연세대 자유전공학부 13학번 학생)
“회사 면접관이 무슨 과를 나왔냐고 하면 저는 도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하죠? 학교에 의해 제 대학시절 정체성이 삭제당한 느낌입니다.”(한국외대 자유전공학부 10학번 학생)
지난 2009년 ‘글로벌 융합 인재의 육성’을 목표로 내걸고 대학마다 야심차게 도입했던 자유전공학부가 도입 4년 만에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대학들은 폐지 추진 이유를 “자유전공학부가 본래 취지와 다르게 경영학과로 진입하는 하나의 관문 또는 전문 고시반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은 “대학이 교수진도, 커리큘럼도 확보하지 않고 방치하다 이제 와서 일방적으로 폐지하니 학생들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법학과 폐지로 남은 정원 확보용…방치후 폐지는 예정된 수순?=자유전공학부의 설립 당시 대학들이 내세운 명분은 ‘학문적 융합’과 ‘글로벌 인재의 육성’이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로스쿨 유치에 성공한 25개 대학들이 법학과를 폐지하면서 생긴 잉여정원 흡수를 위해 경쟁적으로 만든 것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4일 “법학과에 쏟던 인력과 돈이 로스쿨에 들어가게 되자 상대적으로 자유전공학부를 방치해온 것이 사실”이라며 “자유전공학부의 폐지는 어찌 보면 예정된 수순”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앙대는 도입 1년 만인 지난 2010년, 성균관대는 지난 2011년 각각 자유전공학부를 폐지했다. 최근에는 연세대와 한국외대가 자유전공학부를 없애기로 해 학생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연세대는 자유전공학부를 폐지하는 대신 송도 국제캠퍼스에 글로벌융합학부를 신설한다는 방침이고, 외대는 내년부터 고급 외교관 육성을 위한 ‘L&D(Language & Diplomacy)학부’를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쏠림현상, 정체성 모호” vs “부실 운영 대학 책임”=연세대 관계자는 “그동안 자유전공학부 출신 학생들의 약 66%정도가 경영·경제학과를 택하는 ‘쏠림현상’이 나타났다”며 “폐지를 한다 해도 학생들 모두 2학년에 올라가며 각자 전공을 배정받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외대는 “학문적 정체성이 없고,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폐지 이유를 말했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대학이 학생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고 비판했다. 오동하(21) 연세대 자유전공학부 학생회장은 “입학 첫 해, 전공탐색 과목으로 들은 것 중 절반 이상이 상경계열 과목”이라며 “다양한 전공 탐색의 기회는 주지 않으면서 학생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외대의 경우 현재까지 배출된 졸업생이 단 3명(학사장교 2명·외무고시 준비 1명)에 불과해 학과의 비전을 판단하기엔 다소 이르다는 게 학생들의 주장이다.
학생들은 오히려 “학교가 과부터 만들어 놓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커리큘럼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방치해왔다”고 입을 모았다. 익명을 요구한 외대 자유전공학부 학생은 “지난 2009년 입학 당시 개강 일주일전까지 교수도 커리큘럼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며 “당시 우리 학교 전체 수석과 차석이 모두 자유전공학부 출신이었는데 이를 견디지 못하고 반수와 자퇴 등으로 학교를 떠난 것만 봐도 학교가 우수한 학생들을 얼마나 방치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연대 자유전공학부 12학번 이지수(20·여)씨 역시 “막상 입학해보니 자유전공을 위한 학교 측의 프로그램이 전무해서 황당했다”며 “학사지도교수나 주임교수 등과 진솔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일 년간 단 한 번도 없다”고 지적했다.
입학 한 달 만에 학과 폐지 통보를 받은 신입생들은 패닉 상태다. 외대 자유전공학부 1학년 노진(20)씨는 “입학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새내기들 사이에서 ‘전과’나 ‘반수’란 단어들이 나온다”며 한숨을 쉬었다. 익명을 요구한 외대 자유전공학부 4학년 학생도 “학교 측에서는 ‘L&D학부로 전과를 보장해주겠다’고 하는데 이는 임기응변식 ‘달래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오동하 연세대 자유전공학부 학생회장은 “무엇보다 학생들은 지금껏 이어온 학생공동체가 공중분해 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을 많이 한다”며 “학교 측은 학생공동체의 순기능이나 사회 진출 이후의 장점을 간과한 채, 너무 자의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대학이 알아서 할 일” 뒷짐=교육부는 학생 정원에 변동이 없는 한, 학과 설립 및 폐지는 학교의 자율적인 권한이라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총 정원 내에서 학과의 신설이나 폐지는 대학 자율에 맡겨두고 있다”고만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계 관계자는 “대학은 입시학원이나 고시반이 아닌 학문 연구의 장”이라며 “임시방편으로, 유행 따라 학과를 만들었다 없앴다 하는 대학 때문에 피해를 보는 학생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수현 기자, 전수민·정건희 수습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