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용 선장 ‘사랑법’으로 세상 깨운다… 1985년 인도양서 모든 배들이 외면한 ‘보트피플’ 96명 구출

입력 2013-04-04 17:49 수정 2013-04-04 21:36


이장호 감독·유태환 집사 등 4인 ‘광명 87 프로젝트’ 돌입

망망대해에서 생사 기로에 선 ‘보트피플’(월남 패망을 전후로 바다로 탈출한 베트남 난민)을 구해준 전제용(72·멍게양식업) 전 선장, 그 은혜를 기억하면서 전 선장처럼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피터누엔(69·간호사)을 포함한 난민들. 그리고 이들의 사연 속에서 예수의 마음과 신자의 사명을 발견한 크리스천들. 2013년 봄, 이들 모두가 등장하는 우리 시대의 희망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바로 ‘광명 87 프로젝트’다.

◇전제용 선장을 아시나요=1985년 11월 14일, 원양어선 ‘광명 87호’의 전제용 선장은 인도양에서 조업을 마치고 부산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말라카 해협을 지날 무렵, 그는 쌍안경으로 조그마한 배를 발견했다. 보트피플이었다. 전 선장은 회사에 연락해 난민들을 구조해도 되는지 물었다. 결과는 ‘노(No)’. 그는 회사 지시에 따라 보트피플을 지나쳤다.

혹시나 구해줄까 기대했던 피터누엔씨를 포함한 96명의 난민들은 콩나물시루 같은 배에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다. 이미 나흘간 마흔 척이 넘는 배가 그들을 외면한 터였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멀어져 가던 ‘광명 87호’가 보트피플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닌가.

보트피플의 운명을 가른 그 30분 동안 광명 87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전 선장은 선원들을 불러 긴급회의를 열어 공언했다. “내 양심상 저들을 놔두고는 못 가겠다. 난민들을 구조한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똑같은 내용을 회사 측에도 전했다. 회사는 물론 정부 당국에서는 부정적인 답신이 이어졌지만 그는 무시했다.

부산에 정박하기까지 14일 동안 전 선장과 선원들은 난민들을 극진히 보살폈다. 덕분에 무사히 도착한 난민들은 1년 뒤 그들을 받아준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 호주 등으로 떠나 새 삶을 시작했다.

96명의 난민 중 한 명인 피터누엔씨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간호사로 안정된 삶을 살면서도 늘 한 사람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생명의 은인’ 전 선장이었다. 그는 관련 신문기사와 사진 등을 차에 싣고 다니면서 한국인을 만날 때마다 전 선장을 수소문했다.

지성이면 감천. 2004년 8월 피터누엔씨는 꿈에 그리던 전 선장을 초청, LA공항에서 얼싸안았다. 헤어진 지 19년 만이었다. 그동안 전 선장은 어떻게 살았을까. 난민들과 함께 부산에 도착한 직후 그는 회사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경남 통영으로 내려가 멍게 양식으로 지금까지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광명 87 프로젝트’와 예수=2005년 가을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의 베델한인교회(손인식 목사). 주일 예배 설교 중에 예화로 소개된 전 선장 스토리를 접한 유태환(65·사업) 집사는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다. “40년 넘게 이민생활을 하면서 이방인의 처지를 잘 알거든요. 그들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한 100명 가까운 난민들을 구한 사람이 한국인이라니 가슴이 벅찼어요.” 그는 전 선장을 꼭 만나고 싶었다. 그 역시 수소문 끝에 전 선장 연락처를 알아냈고, 수년간 교제해오면서 한 가지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전 선장의 선행이 묻혀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보여준 인도주의 정신과 생명 사랑의 마음을 세계에 알리고 많은 이들이 본받도록 나서 보자고 뜻있는 분들과 마음을 모았죠.”

유 집사와 손잡은 이들은 원종임(59·명문교회 담임) 목사와 이장호(68·영화감독) 장로, 문명숙(59·비손교회) 권사 등 4명. 이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기구가 ‘광명 87재단’이다. 연내 정식으로 출범하는 재단은 몇 가지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우선 오는 10월쯤 전 선장과 보트피플간 상봉이 추진된다. 이미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에 거주하는 70여명의 명단과 소재를 파악한 상태다. 또 한 가지는 전 선장 스토리를 영화로 만드는 것. 제목은 ‘96.5(가제)’. 구조 당시 난민(96명)과 그 중 임신한 여성의 태아까지 포함한 숫자를 의미한다. 올 하반기 촬영을 앞둔 영화는 이장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원 목사는 “전 선장의 선한 마음과 행동은 예수님을 닮았다”면서 “크리스천들에게 본이 될 수 있게 한국교회가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글·사진=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