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최대 소원은 상장” 옛말… 자진 포기 속출
입력 2013-04-04 17:45
중소기업에 주식시장 상장이 평생의 숙원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주식시장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하는 기업은 해가 갈수록 줄고 있다. 심사를 통과하고 나서도 “제값을 받기 어려워 보인다”며 스스로 상장을 포기하는 기업까지 속출하고 있다. 상장을 쉽게 안 해주려고 깐깐했던 금융당국이 오히려 유인책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증시 문 두드리는 기업이 줄어들고 있다=한국거래소는 상장공시시스템(KIND) 분석 결과 유가증권시장(코스피시장)과 코스닥시장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한 기업이 2010년 135곳, 2011년 97곳, 지난해 63곳으로 지속적인 감소세라고 4일 밝혔다. 2년 만에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올 들어서는 1분기가 지나도록 신규 상장을 원하는 기업이 2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상장을 신청했다가 자진 철회하는 기업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 비중은 2010년 11.9%(16곳)에서 2011년 12.4%(12곳), 지난해 20.6%(13곳)로 껑충 뛰었다.
일부는 거래소가 너무 엄격한 상장심사 잣대를 들이대는 통에 기업공개(IPO) 시장이 부진하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거래소의 심사가 강화돼 기업이 지레 겁을 먹고 백기를 드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김봉수 거래소 이사장은 “깨끗한 채소를 진열해야 손님이 찾아온다”는 지론을 내세우며 우량 기업 선별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IPO 시장의 활력 상실은 상장심사 강화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신규 상장 신청 기업 중 거래소가 탈락시킨 기업의 비중은 최근 3년간 거의 엇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예비심사 미승인’ 기업 비중은 2010년 17.0%(23곳), 2011년 14.4%(14곳), 지난해 17.5%(11곳)로 집계됐다.
◇왜 상장을 포기하나=상장 포기가 늘어난 직접적 원인은 국내외 경기둔화에 있다. 상장을 신청한 뒤 업황 악화로 영업실적이 부진해지고, 이에 따라 최초 공모가격이 성에 안 차는 경우가 잦아진 것이다. 기업은 스스로 매긴 기업가치보다 공모가가 낮게 형성되면 과감하게 상장을 포기하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먼 길을 가더라도 제 값을 받는 쪽을 선택하는 기업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말에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을 시도했던 포스코특수강이 6개월의 승인효력기간을 모두 보낸 뒤 상장을 포기하기도 했다.
포스코특수강은 “수요예측 결과 국내외 증시 불확실성, 철강 업황에 대한 우려로 투자심리가 위축돼 회사 가치를 적정하게 평가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하반기 IPO 시장의 ‘대어’로 평가받았던 삼보이엔씨와 LG실트론도 거래소 측에 상장포기 의사를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당국은 얼어붙은 IPO 시장을 보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자본시장 참가자의 의무를 강조했던 강경 기조에서 벗어나 유인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만간 출범하는 중소기업 전용시장 코넥스(KONEX)는 현재보다 각종 규제가 훨씬 완화될 전망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최근 간부회의에서 “저금리 기조 속에서 비상장 기업의 상장 유인은 더욱 줄어들고, 자본시장 활력도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상장기업이 비상장기업에 비해 제도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현재 상장관련 규제체계의 문제점을 면밀히 점검,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시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