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운식 (5) ‘반도호텔 220호실’… 서울항공, 작지만 믿음의 飛翔
입력 2013-04-04 17:12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 14년간 삼촌 라반 밑에서 봉사했다. 야곱은 14년간 사랑하는 아내뿐 아니라 홀로 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내게는 딱 절반의 시간 안에 자립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1971년은 내가 노스웨스트 항공 총대리점인 샵항공에서 일한 지 꼭 7년이 되던 해였다. 당시 나는 회원 항공사의 매표 업무와 영업 총괄을 책임지고 있었다. 지난날 미국무성 해외경제협조처(USOM)에서 익힌 실무 영어가 영업을 하는 데 여간 유용하게 사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샵항공에 입사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 여행사는 6∼7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몇 년 만에 20여개 업체가 더 늘어나 업체 간 경쟁은 치열해졌다. 더불어 스카우트 전쟁도 시작됐다. 내게도 몇 차례 제안이 있었고, 그중에는 대표이사 자리를 제안한 업체도 있었다. 하지만 여행업계에서 나를 받아주고 키워 준 샵항공을 떠날 수는 없었다.
다행히 당시 노스웨스트 총대리점과 국제항공수송협회(IATA) 회원 항공사의 매표 업무가 분리되면서 샵항공의 백종근 사장은 내가 총괄 관리하던 IATA 항공 대리점 업무를 떼어 내 독립시켜줬다. 그렇게 해서 ㈜서울항공여행사가 탄생했다.
창업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USOM과 샵항공에서 받은 월급으로 집은 한 채 마련할 수 있었지만 창업자금까지 모을 여유는 없었다. 게다가 주식회사로 법인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자본금이 500만원이 필요했다. 지금이야 500만원이 큰돈이 아닐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쉽게 만져볼 수 없는 큰돈이었다.
그러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주위의 인맥을 총동원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가 여행업계와 항공산업의 미래에 대해 설명하고 투자를 권유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대학교 은사이신 최민홍 박사와 ㈜새한칼라 김종양 사장, ㈜서울교통 이현국 사장 등이 투자를 결정해 주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이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서울항공은 세상에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울항공이 시작된 곳은 서울 반도호텔 220호실이었다. 132㎡(40평) 규모의 사무실에서 11명의 직원과 함께 첫 영업을 시작했다. 창업 이후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친절한 서비스, 신속한 서비스, 정확한 서비스를 서울항공의 행동강령으로 삼았다. 대표이사라며 거드름을 피우기 전에 외국인 여행객들의 항공권을 직접 발권하고, 거래처를 찾아다니며 영업을 했다. 그 결과 서울항공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열심만으로는 서울항공을 특별한 회사로 만들 수 없었다. 아이디어가 필요했는데, 하나님은 어려움에 처해 기도할 때마다 좋은 아이디어를 주셨다. 당시 네덜란드의 선교단체가 운영하는 RAPTIM이라는 법인이 네덜란드 항공사인 KLM과 계약을 맺어 선교사를 위한 특별요금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이를 수소문 끝에 알게 됐다. 미국은 노스웨스트의 특별요금을 이용했다. 덕분에 한국을 찾는 선교사들은 서울항공을 통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미국과 유럽을 오갈 수 있었다.
창업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서울항공은 이후 한국을 찾는 선교사들의 발이 되었고, 국내 여행업계로는 최초로 성지순례 크루즈를 시작해 부흥회와 예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동반된 성지순례 코스를 개발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나의 부와 명예를 위해 서울항공을 세우신 것이 아니라 선교사들과 성도들을 섬기도록 이 회사를 세우셨음을 지금에 와서야 깨닫게 된다.
정리=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