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징후 알고도 당한 6·25 ‘정보전’의 최대 실패작
입력 2013-04-04 17:32
한국정보조직/정규진/한울
조선시대 암행어사부터 오늘날의 국가정보원까지 한국 국가정보조직의 발전사를 한 권에 담은 책이다. 책에는 국가정보조직의 맹아인 조선시대 암행어사와 비변사제도부터 대한제국 황제를 보필하던 제국익문사, 일제강점기 임시정부의 여러 정부 조직과 일본 제국의 경찰 활동, 해방 전후 미국 소련 중국 등 주변 열강의 정보조직과 국내외 조직의 정보활동, 분단 이후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남북 정보 대결이 망라돼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미국 소련 등 주변국 정보조직과의 갈등과 협조, 경쟁과 대립도 살펴볼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정보조직의 역사와 정보활동의 역사는 구별된다. 정보조직이 생기기 이전에도 정보활동은 무수히 있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삼국사기’는 신라, 백제, 고구려 사이에도 정보활동이 존재했음을 기록한다. 삼국시대 첩자의 대부분은 승려로 가장했고, 실제 승려가 직접 참여했던 사례도 많다는 것이다.
정보활동은 경제적 관점에서도 이익이 적지 않다. 적대 세력에 대한 폭파, 납치, 암살 등의 범죄수단을 동원하는 비밀공작은 소수 인원과 장비, 그리고 저렴한 비용으로 비교적 큰 정치·외교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약소국에서는 빈번히 사용된다. 일제 시대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가 비밀공작이라는 운동방법을 선택한 것도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두기 위한 전략이었다.
국가정보의 핵심적 요건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아는 것과, 그것을 국가 운영에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그런 정보전의 최대 실패작은 6·25전쟁일 것이다. 6·25 남침 징후를 미리 파악했음에도 정보 전달과 정세 판단이 원활하지 않아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일은 국가 최고 책임자가 정보의 중요성과 올바른 활용방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을 때 어떤 파국을 맞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국가 차원의 정보활동이 기민하고 조직적일 때 국가는 흥하고, 정보의 가치를 경멸할 때 국가는 쇠퇴해 간다.”
국가정보조직에 대한 연구자인 저자는 정보기구의 외부자이다. 그럼에도 정보기구에 대해 그가 갖는 입장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 일한 베테랑 첩보원 출신으로 ‘첩보의 기술’을 쓴 헨리 A. 크럼프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보활동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스파이 영화처럼 흥미 위주에 머물거나 국가의 탄압 도구라는 부정적인 관점에서 다뤄져왔다. 이 책은 그런 한계를 딛고 학자적 관점에서 정보기구를 본격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