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판타지로 표현한 현대사의 아픔… ‘집으로 가는 길’
입력 2013-04-04 17:45
집으로 가는 길/글 하이로 부이트라고·그림 라파엘 요크텡/노란상상
유아들은 밝고 환한 세상 이야기만 알아야 할까. 그들에게 어른들이 겪는 삶의 무게를 전하는 건 잘못일까. 광주민주화항쟁 같은 현대정치사의 비극을 이야기하는 건 또 너무 이른 것일까.
‘집으로 가는 길’은 부모라면 한 번쯤 고민할 문제에 대해 드물게 해답을 제시했다. 판타지를 통해 이렇게 호소력 있게 현실의 아픔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저자들은 콜롬비아 출신의 작가들답게 콜롬비아 현실을 모티브로 삼았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넘길 즈음에야 이를 깨달을 수 있으니 이게 책이 갖는 힘이다.
남루한 차림의 주인공 소녀. 학교가 파하자 듬직한 사자에게 집으로 가는 길동무를 해달라고 요청한다. 소녀는 엄마를 대신해 어린이집에서 동생을 빨리 찾아야 한다고 하자 사자가 자신을 등에 태우고 쏜살같이 가기도 한다. 길은 멀지만 버스를 탈 형편도 못되고, 엄마를 대신해 가게에서 적은 돈으로 장을 보기도 한다. 이처럼 소녀의 가난을 눈치채게 하는 장치들이 이어진다.
“조금 있으면 엄마가 오실 거야. 그때까지 함께 있어줄래?” 마침내 퇴근한 엄마의 그늘진 얼굴과 축 처진 어깨. 통상 그림책에서 묘사되는 밝고 강한 엄마의 이미지와 사뭇 달라 놀랄 정도다.
클라이맥스는 마지막 장이다. 밤이 돼 침대에서 세 가족이 나란히 누웠는데, 부재한 아빠는 침대 머리맡 액자 속 가족사진에 있다. 그 모습이 길동무해준 소녀의 상상 속 사자를 쏙 빼닮았다. 거기 함께 놓인 ‘1985년 분쟁으로 수만 명 가족 잃어….’라는 캡션을 단 낡은 신문은 모든 것을 말해주지만 그걸 어떻게, 어디까지 설명할지는 부모의 몫이다. 김정하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