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남호철] 수첩을 오답노트로 바꿔라

입력 2013-04-04 17:23


“나홀로식 인선 방식과 인사 검증 시스템의 문제점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수험생이 문제집을 푼 뒤 자신의 약점을 정리한 것이 오답노트이다. 이를 활용하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짧은 시간 내에 다시 살펴봄으로써 실수를 최대한 줄일 수 있어서 좋다.

4일로 취임 100일을 맞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오답노트’가 새삼 화제다.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해 9월 아베 총리는 전후(戰後) 최연소 총리로 선출되며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내각을 측근들로 채워 ‘친구내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각료들의 실언과 이들에 대한 자질 시비 등으로 지지율은 급락했다. 결국 1년 만인 2007년 1기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때부터 그의 변신이 시도됐다. 퇴임 이후 부실 인선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실패한 정책에 대해서는 문제점을 찾아내 개선방안을 강구했다. 여기에 ‘비밀노트’를 활용했다. 여러 권의 노트에 집권 당시의 실패 요인 등 문제점은 물론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를 빼곡히 정리했다. 인사검증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하고 장기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제를 어떻게 개조해야 하며 국민들에게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지 등을 적어놓았다고 한다. 잘못된 인사 때문에 국정 에너지를 과다하게 소모했다는 자기반성도 포함했다.

5년간의 와신상담 끝에 그는 지난해 12월 26일 다시 총리에 올랐다. 취임 때만 하더라도 ‘잃어버린 20년’을 초래한 역대 총리들과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라는 냉소를 받았다. 극우 외교정책으로 주변국과 갈등을 빚고 현실성 없는 경제 정책으로 일본을 더욱 수렁에 빠뜨릴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아베 총리가 아니었다. 겸허하게 비밀노트에 적어놓은 국정운영 비전과 철학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모든 정책을 혼자서 결정하려다 오히려 혼미에 빠졌다는 반성을 토대로 정치 경쟁자를 내각과 당에 기용하는 등 탕평책을 구사했다. 대신 측근들은 총리실 참모 등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 배치, 자신의 정책을 뒷받침하도록 했다. 이에 일본 여론은 그에게 후한 점수를 줬다. 취임 초 52%였던 지지율이 70%로 치솟았다.

출범 한 달이 조금 지난 박근혜 정부는 어떤가. 장차관급 고위인사가 잇따라 낙마하는 부실 인선으로 ‘불통 논란’에 휩싸이면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지율은 40%대 초반으로 뚝 떨어졌다. 취임 초기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이 정도로 낮은 것은 이례적이다.

여기에다 창조경제 개념 등 각종 정책의 혼선, 성의 없는 ‘17초 대국민 사과’ 등이 겹치면서 여당인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국정운영 미숙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국가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부를 걱정해야 한다는 등 자조 섞인 말도 횡행하고 있다.

문제의 저변에는 박 대통령의 상징이 된 ‘수첩’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사람을 만날 때 꼼꼼히 메모한 것에 얽매이다 보니 자신이 눈여겨봐 둔 인사만 일방적으로 낙점할 뿐 폭넓게 인재를 발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미 낙마한 고위인사들은 차치하고라도 지난 2일 인사청문회를 한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의 사례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윤 후보자는 도덕적 흠결을 비켜갈 것으로 예상돼 낙점됐지만 전문성은 물론 답변태도 준비성 등 모든 면에서 자질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나 또 다시 논란을 낳고 있다.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면 인사 실패는 이어지고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더 떨어질 것이 자명하다.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가게 마련이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대통령의 나홀로식(式) 인선 방식과 인사 검증 시스템의 문제점을 꼼꼼히 따져 봐야 할 시점이다. 실수와 과오를 ‘오답노트’로 작성해 차후에 되풀이하지 않으면 국정운영에 약(藥)이 될 것이다. 과거의 실패와 좌절을 반성하고 국정운영의 자양분으로 만들고 있는 아베 총리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도 될 듯싶다.

남호철 논설위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