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황태순] 4·24 재보선 감상법
입력 2013-04-04 16:48 수정 2013-04-04 17:23
어제와 오늘 4·24 재보선 후보등록이 진행 중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서울 노원병, 부산 영도, 충남 부여·청양 세 곳의 국회의원을 선출한다. 숫자로는 세 명의 국회의원이지만 정치적 함의는 300명 중 3명, 즉 100분의 1을 훨씬 뛰어넘는다. 유력한 후보가 안철수, 김무성 그리고 이완구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거대한 바람을 부를 나비의 날갯짓이라고나 할까.
우선 안철수를 보자. 지난 3월 3일 안철수의 최측근인 송호창 의원은 전격적으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숨이 넘어갈 듯이 안철수의 노원병 출마를 알렸다. 지난해 12월 19일 대통령선거의 결과도 보지 않고 훌쩍 미국으로 떠났던 안철수다. 70일 넘게 꼭꼭 숨어 지내던 그다. 사실상의 정치적 망명 중이던 안철수는 왜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출마를 결심했을까.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기점으로 ‘안철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낡고 시들고 병든 기성 정치에 환멸을 느낀 국민들은 안철수를 새로운 메시아 정도로 바라봤다. ‘안철수 현상’ 앞에 여야 정치권은 앞 다투어 변화와 혁신을 약속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공언했다. 그때뿐이었다. 선거가 끝나자 원래 그 모습으로 바로 다시 돌아갔다.
안철수를 부른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현재의 여야 정치권이다. 안철수가 출마선언을 하던 바로 그날 청와대와 민주당은 뒤엉켜 서로가 서로에게 삿대질하며 머리끄덩이 싸움 중이었다. 국민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정치 불신과 정당 혐오의 아픈 추억이 되살아나기 십상이다. 장기체류를 할 수밖에 없었던 안철수에게 급거 귀국의 초청장을 보낸 것이다.
김무성을 보자. 지난해 4·11총선에서 공천 탈락됐던 그다. 현역의원 25% 컷오프의 명분아래 정치적 숙청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정에 승복했다. 미국 배낭여행을 하며 와신상담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대선 직전 화려하게 부활했다. 허울만 좋은 선대위의장 자리 제안을 과감하게 뿌리치고, 실제 일할 수 있는 총괄본부장으로 스스로 한 단계 강등을 하면서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로 가면서 새누리당은 노도 돛도 없는 멍텅구리 배 같은 신세다. 박 대통령은 전문가와 관료들을 앞세워 국정을 이끌어가려 한다. 얼마 전 고위 당·정·청 워크숍에서 “10년을 모신 우리들 앞에서 3개월 모신 참모들이…”란 새누리당의 불만은 박 대통령 들으라고 한 말일 것이다. 그러던 차에 무대(무성 대장이란 뜻)의 귀환은 가뭄 끝에 단비다.
이완구는 어떤가. 충남지사로 재직 중이던 2009년 12월 그는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추진에 반발하여 지사직을 사퇴했다. 충청도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순간이다. 개인적으로는 암과의 투병에서도 이겼다. 김종필-이회창으로 이어지는 충청 맹주의 후계자가 될 만하다. 김무성과도 한 살 차이로 큰 꿈을 꾸어볼 만한 나이다. 허전한 새누리당에 활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5년 전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정치를 멀리했다. 그리고 통치에만 전념하면 되는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집권 두 달 만의 총선 실패와 촛불시위는 5년 가까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첫 선거인 이번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은 ‘2대 1’의 평년작은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제3세력의 재등장과 여권 내부에 새로운 견제세력의 등장이다.
곧 우리는 4·24 재보선의 의미를 되짚어볼 것이다. 당선인 시절 67일과 취임 후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안철수의 조기 귀환, 집권당의 무기력, 여권 내부의 갈등을 초래했는지. 또 40%선으로 추락한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가 좀처럼 반등의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는지. 민심은 아침저녁으로 변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와 함께.
황태순(정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