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파고 들어 일상의 뒷면을 헤집다… 황혜경 첫 시집 ‘느낌 氏가 오고 있다’

입력 2013-04-04 17:30


신예 시인 황혜경(40·사진)은 관성적인 언어를 거부한다. 손쉬운 상징과 타협하지 않는다. 비교적 늦깎이라 할 2010년 문단에 나온 그의 첫 시집 ‘느낌 氏가 오고 있다’(문학과지성사)는 자기만의 독자적인 시 문법을 구축하려는 치열함이 돋보인다.

“명확한 구분의 결과로 한 모/ 두부를 사 들고 걸어오면 규모가 졸졸 따라오고/ 돌아와 나는 어떻게 자를 것인가 고민하고/ 와해의 가능성을 가득 품고 있는 두부// (중략)// 고요하고 부드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매혹적인가”(‘두부의 규모’ 부분)

각진 네모꼴이지만 언제든지 와해될 것처럼 물컹거리는 두부의 속성을 자신의 내면에 대입시켜 그리고 있는 이 시는 늘 반은 먹고 반은 남겼다가 결국 남은 반을 버리게 되는 두부의 규모가 바로 우리 삶의 규모라고 말한다. 그의 언어는 연약한 두부를 파고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우리 삶을 파고드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언어로 차마 다 포괄할 수 없을 것 같은 복잡한 순간과 시간 속으로 파고들어 일상의 뒷면을 헤집는다.

“수선집 아줌마가 바지로 가방을 만들어준다고 했을 때/ 떠오르던 실내/ 뒤집어도 볕이 들지 않던 실내/ 안을 떠올린 건 그날 뿐만은 아니었다// (중략)// 바지의 외부의 바지의 내부의 외부의 내부의 바지에 의해/ 가방이 완성될 때까지/ 나는 외부의 내부의 외부의 내부의…를 반복하다가”(‘모호한 가방’ 부분)

수선집 아줌마가 바지를 뜯어 가방으로 만들 때, 수없이 외부와 내부가 뒤집어지는 바지의 속성은 모호하다. 그것은 가방일까, 바지일까. 그래서 ‘모호한 가방’일 터. 수선집 아줌마가 바지를 뒤집을 때, 황혜경은 자신의 생각을 뒤집는다. 결국 그가 표출하고자 하는 건 생각 안쪽의 느낌인 것이다.

“부르르 떨다가 순식간에 뒤집히는 세상의 외피 그리고 속살처럼 나의 1초 밖의 영원한 느낌 氏 부드럽게 방만과 오만과 체념에게는 여러 색깔의 자극을 주고 살려내고 손질하는 느낌 氏를 나는 좋아한다.”(‘느낌 氏가 오고 있다’ 부분)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