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여배우서 연기파 배우로… ‘송혜교의 재발견’
입력 2013-04-04 08:01
‘오영’ 역으로 열연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종영
SBS 수목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한마디로 ‘송혜교의 재발견’이다. 드라마에서 송혜교는 대기업 상속녀이지만 엄마를 잃고 시력도 잃으면서 누구도 믿지 못하는 차가운 ‘오영’ 역을 맡았다. 이마부터 턱까지 클로즈업돼 화면을 가득 채운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 미세한 떨림으로 시작해 눈물로 번져나가는 섬세한 감정연기. 드라마 종방일인 3일 오후, ‘얼굴 예쁜 여배우’에서 ‘연기도 잘 하는 배우’로 한 걸음 더 나아간 송혜교(31)를 서울 이태원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송혜교 본인도 이번 작품에 대한 만족감과 뿌듯함을 숨기지 않았다. “사실 예쁜 배우들이야 20대 배우들도 많고, 예쁜 걸로만 승부 보는 건 이제 지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에선 연기 욕심이 많았죠. 그런데 그동안 칭찬을 너무 못 받다가 이번에 갑자기 칭찬을 많이 해주시니 오히려 ‘뭐가 잘못된 건가’ 할 정도로 당황스러웠어요. 정말 너무 감사해요.”
‘그 겨울…’에서 송혜교는 시각장애인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 “초반에는 연기도 힘든데 시각장애인 역할까지 겹쳐서, 이걸 어떻게 하지 앞이 깜깜했어요.” 현실감 있는 연기를 위해 시각장애인 복지관을 찾아가 극중 오영의 상황과 비슷한 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분들이 ‘전혀 모르는 장소면 모를까, 평소 다니는 장소에선 더듬거리거나 헤매지 않는다’며 자연스럽게 보이고 싶으면 그런 오버는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저도 몰랐던 부분을 많이 알게 되면서 작품 하는 동안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거의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는 연기가 쉽진 않았다. “이전에는 상대 배우의 눈을 보며 감정을 잡고 연기했는데, 아예 시선처리를 할 수 없게 되니 너무 답답했죠. 촬영이 끝날 때마다 ‘내가 이걸 잘 한 건가’ 고민했어요. 그렇게 6개월을 살고 나니 이제는 다른 사람 눈을 보는 게 불편해 제가 먼저 피하게 되더라고요. 습관이란 게 무섭죠.”
친오빠라며 찾아온 ‘오수’(조인성 분)가 돈을 노리고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도 그를 사랑하게 되는 역할이다 보니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이 많았다. 지난 4년간 중국 왕자웨이 감독의 ‘일대종사’ 촬영을 하면서 맘 고생한 게 오히려 약이 됐다. 엽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에서 송혜교는 엽문의 부인 역을 맡았다.
“유명한 감독과 제작진 밑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겠다 생각하고 갔는데, 분량이 많지 않은데다 완벽하게 준비가 안 되면 촬영을 안 하는 감독 때문에 아예 헛걸음하고 올 때도 있었어요. 모든 게 낯설었어요. 나중엔 ‘이왕 시작했는데 한 컷이라도 더 나와야지’ 하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러면서 너무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찰나에 이 드라마를 만났고, 4년이란 시간동안 가졌던 고민이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쪽대본이 난무하고 생방 촬영이 기본인 드라마 제작 환경이지만 이번 작품은 달랐다. 대본은 미리 완성돼있었고, 사전 제작 비율도 높았다. “복을 받았죠. 대본도 빨리 나왔고, 촬영도 빨리 들어가고. 저랑 조인성, 김범, 정은지 등 주인공 4명이 작가 선생님과 만나서 장면 해석하고 공부하며 했어요. 모두 감정을 공유했기 때문에 의도했던 방향대로 다 전달이 됐죠.”
차기작에 대한 부담도 클 법했지만 그는 다양한 장르, 그동안 안 해봤던 캐릭터를 해 보고 싶다며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저는 타고난 배우가 아니라 노력형 배우이기 때문에 좋은 분들과 공부하면서 연기하면 생각지 못한 그림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요. 자기 색깔이 확실히 있는 감독님들, 박찬욱 봉준호 감독님이랑도 작업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저에게 생각지 못하는 모습이 나오는 캐릭터를 맡고 싶어요. 가령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 선배님이 맡았던 역할 같은 거요.”
종방과 동시에 송혜교는 오우삼 감독과의 새 영화 촬영을 위해 중국으로 날아간다. 한국에선 드라마보다 영화로 다시 돌아올 듯하다.
“우스갯소리로, 이번 작품 반응이 좋아서 앞으로 5년은 망해도 상관없겠다고 했어요. 제가 모험하는 걸 좋아하니까 앞으로 5년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망해도 좋겠다고요(웃음). 이번에 워낙 감정적으로 소모가 많이 됐기 때문에 (차기작은) 좀 밝은 로맨틱 코미디를 하고 싶어요.”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