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황일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에 성공하려면
입력 2013-04-03 18:41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시설을 양국이 공동 운영하는 세계화 방안을 검토할 때”
한·미원자력협정의 개정 시한이 내년 3월로 임박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5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첫 만남에서 이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룰 것으로 보인다. 1953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유엔에서 핵무기의 확산을 막고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방안’이라는 역사적인 연설을 하였다.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나라들에게 원자력 기술을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원자력기술은 극비에 속하며 미국이 독보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므로 세계 모든 나라들이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제안을 환영하였다.
우리나라도 그해 한·미원자력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미국에 원자력 시찰단과 유학생들을 보낼 수 있었다. 원자력연구소가 설립되고 연구용 원자로가 도입되기 직전에 한·미원자력협정은 보다 구체적인 형태로 개정되었다. 그리고 고리 1호기 원전(原電)에 원자로가 설치되기 전인 1974년에 한 번 더 개정되었다. 양국은 2014년 3월까지 양국이 별도의 동의가 없다면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을 하지 않으며 공급된 원자력 기기들을 제3국으로 반출하지 않는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난 35년간 우리나라는 원자력발전을 확대하면서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은 물론 낮은 전기료를 유지하며 원자력의 철저한 품질관리 기술이 산업 각계로 퍼져나가 산업경쟁력을 갖추는 데 일조하였다. 그러나 그 사이에 사용후핵연료가 무려 1만3000t이나 쌓이고 발전소 내의 임시저장고를 가득 채우게 되었다. 향후 수년 내로 별도의 중간 저장 시설의 건설에 필요한 부지를 확보하지 않으면 원전의 가동과 신규 원전의 건설도 중단되어 우리의 전기와 경제사정은 지극히 어려워질 것이다.
사용후핵연료는 고준위폐기물로서 지하에 매설할 경우, 100만년간의 안정성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수백번의 핵실험이 이루어진 광활한 사막을 가진 미국도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30년 전에 선정된 사용후핵연료의 지하처분장의 건설계획이 미궁에 빠진 상태다. 우리나라는 인구밀도가 높고 지하수가 사통팔달하여 지하처분장에서 예상보다 빠른 손상이 발생할 경우, 환경 피해를 막을 수 없다.
이처럼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한·미원자력협정의 개정은 꼭 필요한 것이며 이에 성공하려면 국가 최고책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일본과 스위스는 오랜 기간에 걸쳐 미국과의 원자력협정을 풀어나가는 데 진력한 결과, 사용후핵연료의 재활용과 우라늄 농축권리를 확보하였다. 지난 10여년간 우리 정부는 이 문제에 직면하는 용기를 보이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는 과학기술진이 주로 이 문제의 방향을 결정하여 왔으나, 우리의 상대인 미국의 경우 과학기술은 물론 외교와 산업 전문가들까지 가세하였기 때문에 힘에 겨운 협상을 해 올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번 개정 협상의 전망이 밝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사용후핵연료의 재활용기술개발에 산업계가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과학기술계가 칸막이로 막고 있었던 탓에, 우리의 주장은 연구개발에 급급하여 절박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대책에 충분한 설득력을 갖기 어려웠다. 사용후핵연료 대책의 수립에 산업계가 나설 수 있도록 손톱 밑의 가시를 뽑지 않을 경우, 이번 협상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 미국을 포함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이 이란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동으로 운영하자고 제안하였다. 우리도 시급한 사용후핵연료 대책으로 재활용 시설을 한·미 공동으로 운영하는 세계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때다. 우리나라에 치외법권지역을 설정하고 한·미 공동으로 고준위폐기물처리시설을 지하에 설치한다면 핵물질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북한의 테러에도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원자력 칸막이 행정과 한·미 공동의 핵주기안을 조속히 손질하여 내달의 양국 정상 만남에서 협상의 물길을 되돌릴 수 있기를 바란다.
황일순(서울대 교수·원자핵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