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인해전술
입력 2013-04-03 18:39
“불의 폭풍은 지우개로 지우듯 중공군의 밀집대형을 파괴했지만 그들은 아무런 감각도 없는 무생물처럼 거꾸러지는 전우의 시체를 넘고 피하면서 지옥의 불길 안으로 늠름하게 걸어 들어왔다. 마술로 일시 소생한 귀신들의 행진과 같았다.”
6·25전쟁 때 장진호 전투에 참가해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섰던 미 육군 3대공포대대 소속 존 레베조 병장의 수기에 나오는 대목이다.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우세를 이용해 적을 압도하는 중국의 인해전술 창시자는 북한을 지원하는 인민지원군 총사령관이었던 펑더화이(彭德懷)지만, 국방장관 린뱌오(林彪)가 폐결핵 치료를 위해 소련에 갔다가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가 2차 대전 당시 독일과의 전투에 사용한 전술을 보고 배워왔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인해전술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군이 이미 사용했고, 일제의 황군도 이런 전술을 구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은 큰 희생이 따르는 인해전술을 1953년 포기했지만, 1979년 중월 전쟁에서 다시 도입하기도 했다. 당시 중국의 화력은 갓 독립한 베트남에 비해 우세했지만, 문화혁명 때문에 군의 현대화 계획이 지체되면서 인구를 활용하는 특유의 전술을 폈다.
이란의 민병대인 바시지의 인해전술도 악명 높다. 이란혁명 직후인 1980년 4월 호메이니의 명령에 따라 바시지는 이라크와의 전쟁 때 지뢰밭을 무력화하고 총알받이를 자처하기 위한 인해전술로 수만명이 희생됐다. 당시 외신에 따르면 바시지는 거의 무장을 하지 않고 천국으로 가는 열쇠라는 목걸이만 건 채 일렬로 서서 주먹을 흔들며 전진했다고 한다.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기업 애플이 최근 중국의 인해전술에 무릎을 꿇었다. 중국 관영 CCTV가 지난달 15일 ‘소비자의 날’을 맞아 애플의 보증정책을 비판했지만 애플은 꿈적도 하지 않고 오히려 애플 매장에 간 중국 취재기자들을 문전박대했다. 그러나 다른 매체들의 비판보도가 계속되고 급기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까지 사설을 게재하자 애플 최고경영자인 팀 쿡이 지난 1일 중국 홈페이지에 중국어로 사과문을 올렸다. 쿡은 “고객들의 염려와 오해를 불러일으킨 데 대해 진심으로 사죄한다”며 보증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는 등의 개선책을 내놓았다. 애플의 높은 콧대가 꺾인 것은 매체들의 파상 공격 때문이지만 그들 뒤에 막대한 중국의 인구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을 교역 1위 상대국으로 둔 우리에게 애플의 사례는 남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