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중 목사의 시편] 초고선명 TV 시대의 흑백 사고
입력 2013-04-03 16:54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TV 방송이 시작된 것은 1956년이었다. 물론 당시의 TV는 ‘흑백 TV’였지만 우리 국민들은 현대 과학기술 문명의 이 놀라운 선물에 경탄을 금하지 못했다. 또한 TV 수상기 자체가 워낙 귀했던 시절이어서 TV 수상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천연색’ 세상을 ‘흑백’으로 봐야만 한다는 현실이 답답해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1980년이 되자 ‘컬러 TV’ 시대가 열렸다. 당연히 TV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의류 색상부터가 화려해지기 시작했고, 국민들 전체가 ‘다양한 색감’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1년에는 TV 탤런트들의 땀구멍까지도 선명하게 보인다는 ‘고선명(HD) 방송’이 시작되었으며 2012년 말로 ‘아날로그 방송’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현재 첨단 TV 제조업체들은 ‘초고선명(UHD) TV’ 시대를 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눈과 귀를 지배하는 방송매체는 지난 60년간 눈부신 발전을 했건만, 정작 우리 국민들의 머릿속은 여전히 흑백 시대인 듯하다. 특히 이 시대를 선도하는 지성인들의 사고구조조차 ‘선과 악’의 이분법을 넘지 못하는 듯하다. 여기에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얽히면 상대방을 반드시 찍어내야 할 ‘악의 축’으로 몰아대는 악순환도 반복되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총천연색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개성과 습관이 각각 다를 뿐만 아니라 그런 요소들의 조합은 유전자 조합보다도 더 복잡하고 많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렇게 다채로운 색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하느냐이다.
역사상 위인들 중 완벽한 사람은 없었다. 그들 모두가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도덕적·윤리적이든 치명적인 약점과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한 예로 최근 영국의 애버리스트위스(Aberystwyth) 대학이 발표한 연구논문에 의하면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유럽 국민들이 대기근으로 생사를 달리하던 16세기 말에 15년 동안 2300㎏에 달하는 곡물을 매점매석하고 고리대금을 일삼던 사악한 악덕지주였다. 게다가 탈세 혐의로 기소까지 당했다. 만일 셰익스피어가 우리 시대에 살았더라면 과연 그의 문학세계를 꽃피울 수 있었을까.
물론 각종 비리와 문제를 무작정 덮을 수는 없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로 해당 인물들의 인격과 삶 전체를 일방적으로 매도하거나 그들의 긍정적 공헌까지 완전히 부정해 버린다면 이것 역시 정의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초고선명 TV 시대’에 맞게, 답답한 이분법적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우리의 생각과 시각도 총천연색 고화질로 업그레이드시켜 보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가 바라보는 인물들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도 훨씬 아름답게 변하지 않을까.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언 17:9)
<꿈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