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북한 관리, 제대로 해야

입력 2013-04-03 18:41


북한발(北韓發) 위기로 또다시 한반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번 몸살은 어느 때보다 심하고 오래갈 것 같다. 충분히 관리할 만한 의료진과 처방이 있다면야 이번 몸살을 도리어 체질을 튼튼히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겠지만 의료진에 대한 믿음 부족인지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몸살 바이러스를 퍼뜨린 북한이 거짓말에 능한 노련한 존재라 더 걱정이다.

지난해 말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를 기점으로 시작된 북한의 위협 발언과 행동은 고공(高空) 비행을 하고 있다. 3월 한·미연례연합훈련인 ‘키 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이 시작된 뒤 서울과 미국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했고 남북관계는 준(準)전시상태를 넘어 전시상태라고 위협했다. 영변 핵원자로도 다시 가동한다고 으름장을 놨다.

지난 60년간 화전(和戰) 양면전략을 구사하며 ‘도발→대결구도로 긴장고조→대화국면으로 전환→목표달성’ 과정을 밟아온 북한이 또 익숙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북한은 1994년 제1차 북핵위기 시 이 전략으로 과거에 진행한 핵프로그램을 묵인받았다. 대신 앞으로 핵개발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북한은 국제사회를 안심시킨 뒤 핵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했다. 2002년 2차 북핵위기 때도 같은 과정을 거쳐 북한은 핵능력을 정교화하는 시간을 벌었다. 이번 3차 북핵위기에도 북한은 이런 절차를 밟고 있다. 과거와 다른 점은 속도전이 더해졌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정권교체기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수립되기 전에 강도 높은 위협으로 혼란스럽게 만들고 불안감을 고조시켜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라는 여론을 조성하겠다는 의도다.

이런 북한의 교묘한 전략에 우리는 물론 미국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모두 실패했다. 우리와 미국은 1차 북핵위기 때부터 북한의 의도를 꿰뚫어보지 못했다. 북한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줄 것이라는 희망이 작용한 탓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가 히틀러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유화정책을 폈던 ‘뮌헨 신드롬’의 반복인 셈이다. 위기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의도나 전략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위기가 발생하면 서로 밀고 당기는 대결이 시작된다.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과시하며 상대방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온갖 방법을 사용한다. 수사적인 위협을 하기도 하고 군사력을 전개시키기도 한다.

1962년 10월 미국은 본토에서 불과 120㎞ 정도밖에 안 떨어진 쿠바에 구(舊)소련이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사거리 1700∼3500㎞의 중거리 탄도미사일기지를 건설 중인 것을 포착했다. 미국은 가동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통해 소련의 의도와 전략 파악에 나섰다. 미국은 해상봉쇄라는 무력시위와 함께 소련에 정확한 정보를 전달했다.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위기는 해소됐다.

정치학자 필 윌리엄스는 자신의 책 ‘위기관리: 핵시대의 갈등과 외교’에서 위기관리를 “위기상황이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통제하고 조절하는 과정으로 국가의 사활적 이익이 보호되고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당시 미국의 위기관리는 성공했다.

한반도에서는 1968년 1·21 청와대 피습사건을 비롯해 미얀마 랑군 폭파사건, 강릉무장공비 침투 사건, 3차례의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등 위기가 있었지만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은 경우는 많지 않다. 위기에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모습에 위태로움마저 느낀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협상과 위기조성의 전문가 북한에 비해 위기관리에는 아마추어 같은 정부의 모습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위협발언이 시작된 지 한 달여 지난 2일에야 정부는 첫 외교안보장관회의를 가졌다. 이번에는 제대로 북한을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