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정사회’ 주연 장영남… “독립영화지만 저 아니면 안된다기에 선뜻 출연했죠”

입력 2013-04-03 17:48 수정 2013-04-03 17:50


지난해 2월 전남 장흥 편백나무 숲에서 영화 ‘늑대소년’을 촬영할 때였다. 전화 한 통이 울렸다. 영화 ‘통증’의 프로듀서였던 이지승 감독이었다. “아주 좋은 시나리오가 있어요. 영남씨만이 할 수 있는 영화예요. 당신이 안하면 나도 이 영화 안 할 겁니다.” 영화배우 장영남(40)은 그 자리에서 바로 답했다. “할게요.”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명품조연’ 장영남이 제작비 5000만원짜리 독립영화 ‘공정사회’(18일 개봉)의 주연을 맡게 된 이유다. 무모한 도전에 가까운 제작비 때문에 단 9회차(하루 촬영이 1회차) 만에 끝내야 하는 영화, 감독의 데뷔작으로 메시지는 뚜렷했지만 개봉은 불확실했던 작품. 하지만 장영남에게는 누군가 자신을 철석같이 믿어준다는 게 더 중요했다.

“참여한 배우 스태프 모두 재능기부했어요. 1000원짜리 한 장 오간 적 없어요. 하하. 돈보다 신뢰가 더 큰 자산이죠.” 그런데 뜻밖의 부상을 받았다. “제가 여러 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으로 5번 후보에 올랐지만 한 번도 상은 못 받았는데 이 영화로 첫 주연을 맡아 상도 받고, 개봉도 한다니 뿌듯하네요. 세상이 살아볼 만한 곳이구나 느꼈습니다.” 그는 이 영화로 2012 부산영화제 감독조합상-여자배우상, 2013 미국 어바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지난 1일 서울 을지로의 한 극장에서 만난 그는 약간 얼떨떨하면서도 몹시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저를 믿어준다니 기쁜 마음에 출연을 결정했지만 막상 시나리오를 보니 걱정되더라고요.”

그도 그럴 것이 열 살짜리 딸을 유린한 성폭행범을 찾아 직접 응징하는 ‘아줌마’ 역이었기 때문. 소재도 민감하고, 그가 연기해야 할 폭도 넓었다.

보험회사에 다니며 혼자 딸을 키우는 그녀. 일에 바빠 딸의 하교를 챙기기 못한 날, 딸은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돼 돌아왔다. 하루라도 빨리 범인을 잡고 싶지만 경찰은 너무 느긋하다. 공권력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음을 느낀 그녀는 혼자 서울·경기도 일대를 40일간 돌아다니며 결국 범인을 찾아낸다. 하지만 경찰은 “오늘은 토요일이니 월요일에 가서 잡자”는 한가한 소리만 해댄다. 영화 ‘공정사회’는 공권력에 냉대 받은 힘없는 아줌마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범인을 응징하는 사적 복수로 막을 내린다.

장영남은 이 영화에서 눈물연기부터 범인을 추격하는 액션연기까지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었다. “엄마 역할을 맡을 때마다 우리 엄마를 떠올렸어요. 아직 아이가 없고 상상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 처하는 캐릭터라 연기하기 고통스러웠어요. 영화처럼 사적으로 복수하면 안 되지만 내심 통쾌하기도 했지요.”

2011년 7년 연하의 남편과 결혼한 장영남은 지난해 찍은 영화 세 편에서 다 아줌마 역을 맡았다. ‘늑대소년’에서는 따뜻하고 정감 있는 순이 엄마, ‘이웃사람’에서는 목소리 큰 부녀회장, 이번엔 강하고 현실적인 아줌마. “젊은 시절 연극 무대에선 주인공을 안 해본 작품이 없을 정도로 호사를 누렸죠. 이제는 아줌마 역이 좋고 편해요. 20대의 젊음과 아름다움은 없지만, 아줌마는 강하고 두려운 게 없는 것 같아요.”

최근 MBC 드라마 ‘7급 공무원’, SBS ‘가족의 탄생’ ‘장옥정, 사랑에 살다’ 등의 촬영이 겹치며 보름동안 하루도 쉬지 못했다. 영화 ‘친구 2’에도 캐스팅돼 준비 중이다.

“제 연기 인생에 이 작품이다 할 만한 ‘터닝 포인트’는 없었던 것 같아요. 늘 ‘키핑 포인트’만 있었지요. 한 작품씩 차곡차곡 쌓이면서 조금씩 발전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극단 생활 8년 동안 영화나 TV 오디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한눈팔지 않고 주어진 작품만 열심히 하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