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띄워놓고… 슬그머니 공시 바꾸는 상장사들
입력 2013-04-02 22:14
“고객사 요청으로 프로젝트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오는 9월에 재개될 예정입니다.” “사업주의 제작업체 변경 요청에 따라 납기가 연장되고, 계약 수량이 약 40% 줄어들었습니다.”
1분기가 지나면서 투자자들에게 수주계약 사항이 변경됐음을 알리는 코스닥 상장사의 기재정정 공시가 급증하고 있다. 올해 들어 코스닥 상장사는 작은 호재에도 앞다퉈 자율공시를 남발했지만 이내 말을 바꾸고 있다. 기재정정 공시는 무리한 주가 띄우기는 물론 투자자 기만행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 1분기 코스닥 상장법인들이 제출한 단일판매·공급계약체결 자율공시는 319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290건)에 비해 10.0%가 늘어난 수치다.
단일판매·공급계약체결 공시는 상장법인이 발주처 등 계약 상대방에 대해 생산품·용역의 단독 납품계약을 맺었음을 알리는 공시다. 매출이 늘어나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에 특허권취득 자율공시와 더불어 대표적인 호재성 공시로 꼽힌다. 많은 투자자들이 이런 공시가 발표되면 대거 투자에 나선다. 단일판매·공급계약체결은 주가 이상급등을 의심한 한국거래소의 조회공시에 대한 답변으로도 자주 쓰인다.
지난해보다 이 공시가 늘었다는 것은 겉보기에는 코스닥 상장사의 영업활동이 올 들어 활발해졌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석연찮은 꼼수가 드러난다. 호재를 떠벌린 뒤 슬그머니 이를 정정하는 공시 비중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올 1분기에 단일판매·공급계약체결 공시가 기재정정된 사례는 319건 중 절반에 육박하는 156건(48.9%)에 이른다. 지난해 1분기에 290건 중 102건(35.2%)이 기재정정 공시였던 점을 감안하면 건수·비중 모두 대폭 늘었다.
기재공시 내용을 살펴보면 계약이 해지되거나 축소되고, 계약일이 조정돼 잔금을 건네받을 시기가 미뤄지는 경우 등이 대다수다. 애초에 자율 공시한 내용이 신중하지 못했고, 문제가 있는 것도 적지 않다.
건설사의 경우 발주처에서 공사 대금을 주지 않고 납기를 연장한 사례가 많다. 납기를 연장하면 그만큼 매출이 발생하는 시점도 늦춰진다.
지난달 31일에는 갑자기 기재정정 공시가 속출했다. 1분기 계약 만료일까지 투자자들에게 계약 해지·축소 사실을 꼭꼭 숨기다가 최후 순간에 이르러서야 법적 제재를 당하지 않으려고 서둘러 공시를 했기 때문이다.
기재정정 공시 급증을 두고 증권가에서는 코스닥 상장사가 지지부진한 주가지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침소봉대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투자업계의 한 연구원은 “최근 반등하긴 했지만 코스닥 시장은 출범 이후 계속 부진한 상태였다”며 “상장사 입장에서는 단일판매나 특허권 취득 등 호재성 공시를 적극 내보내 주가를 끌어올리려 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4년여 만에 박스권을 깨고 600선을 내다보는 코스닥 시장은 오랜만에 ‘대세 상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새 정부 출범에 따라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 기대감이 커졌고, 외국인 투자자들도 돌아오면서 코스닥 바람이 불 정도다.
하지만 시장의 신뢰를 잃는다면 코스닥은 다시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평가다. 거래소 관계자는 “신뢰도 회복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향후 코스닥 시장의 상승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