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리 사회 기수문화 하루빨리 던져버려라
입력 2013-04-02 19:40
서열위주에서 탈피하고 공직 소중히 여겨야
동기 또는 후배가 승진하면 사퇴하는 공무원 사회의 비상식적 기수(期數)문화는 하루빨리 없어져야 하는 후진적 관행이다. 사법시험과 행정고시 기수만을 중하게 여겨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소중한 천직을 헌신 버리듯 하는 행태는 국민을 우습게 아는 것이다. 당사자들은 ‘후배를 위한 용퇴’ 운운하지만 서민들은 상상도 못할 고액연봉이 보장되는 대형 로펌으로 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소중한 혈세로 봉급을 받아가며 20∼30년간 공직에서 갈고닦은 기량을 재벌회사나 특정 개인을 위해 되팔아 부를 얻는 행위를 국민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검찰의 경우 총장후보자의 바로 아랫 기수가 무더기로 용퇴를 표명했고, 국세청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관행은 조직과 후배를 위한 것이 아님은 물론 자칫하면 인사반발이나 오만으로 비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고위공무원들이 사직 후 쉽게 고액연봉을 얻을 수 있도록 돼 있는 사회시스템이 문제다. 국내 1, 2위를 다투는 대형 로펌에 검찰이나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내로라하는 권력기관 출신 퇴직공무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 점은 이들의 용퇴가 허언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용퇴인지 되묻고 싶다.
도덕성과 실력을 갖춘 고위공무원은 우리 국민의 소중한 재산이다. 특수수사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 검사는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며, 조세전문가는 악질적인 탈세자를 꼼짝 못하게 만들어 세수증대에 기여한다. 연륜과 경험을 두루 갖춘 고위공무원들이 단지 후배보다 승진이 늦었다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국가나 국민을 위해 전혀 득이 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공직사회의 기수문화가 일반 기업체에도 전염돼 나이 어린 후배가 상사가 될 경우 사퇴를 강요받는 풍경이 낯설지 않은 지도 오래됐다. 따지고 보면 승진이란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능력을 갖춘 인사가 필요해 이뤄진 조직 내 순환현상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은 기수문화가 좀체 뿌리 뽑히지 않은 것은 서열중시 풍조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기수문화를 없애기 위해서는 조직 내 폐쇄적 논리를 떠나 국민들을 위해 정년까지 일하는 여건이 조성돼야 할 것이다. 평생법관제 구축으로 고등법원장을 마친 뒤에 더 이상의 고위직으로 올라가지 못하더라도 다시 일선의 재판부를 맡도록 해 효과를 보고 있는 법원을 참고했으면 한다. 후배가 자신을 추월하더라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격에 맞는 일자리를 보장하는 방안을 강구하란 말이다.
동반 퇴진을 후배를 위한 것이라며 박수치는 것은 구태 중의 구태다. 사회 전체가 개인의 능력을 소중히 생각하고 기수나 선·후배를 따지기보다는 상대를 아끼는 마음이 우선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 갈수록 고령화되는 사회 속에서 너무 젊은 행정부 수장들의 등장이 노회한 정치권의 쉬운 표적이 돼 지나치게 휘둘린다는 지적도 귀담아 들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