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한반도 비핵화’ 전면 폐기… 벼랑끝 협상카드 늘려

입력 2013-04-02 19:40 수정 2013-04-02 22:03


북한이 2일 영변의 5㎿ 흑연감속로(원자로) 재가동 방침을 발표한 것은 기존 6자회담 틀에서 합의된 ‘한반도 비핵화’를 전면 파기하겠다는 선언적 조치다. 나아가 향후 우라늄 농축은 물론 플루토늄 추출 등 모든 핵시설을 동원해 핵무기 개발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것으로도 보인다. 북한은 이미 내부적으로는 경제를 강조하고 대외적으론 핵 위협을 고조시키는 투트랙(병진) 전략을 공식화한 상태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달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리비아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몰락을 연상시키는 ‘중동국가들의 교훈’을 거론하면서 핵무기 보유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은 “제국주의자 압력과 회유에 못 이겨 전쟁 억제력마저 포기했다가 침략의 희생물이 된 발칸반도와 중동지역 나라들의 교훈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중동국가 사례를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가속화된 이후 발표된 북한의 영변 핵시설 재가동 방침은 사실상 예고된 수순 중 일부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핵무력 질량 확대(노동당 중앙위)’, ‘한반도 내 핵전쟁 상황 조성(외무성 성명)’에서 보듯 플루토늄 추출을 위한 원자로 재가동도 핵 증강 목표 중 하나라는 의미다.

따라서 북한의 이번 발표는 6자회담 합의를 하나씩 깨가며 핵 위협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당사국은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007년 2·13 및 10·3 합의를 통해 북한 내 현존하는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 포기, 영변 원자로 등의 폐쇄·봉인, 불능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들 합의사항은 북한이 연이어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대부분 파기된 상태다. 사실상 유일하게 남아있던 5㎿ 원자로 불능화 역시 이번 발표를 계기로 깨지게 됐다. 6자회담도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은 표면적으로나마 평화적 핵 이용을 강조해오던 입장에서 벗어나 공개적으로 핵무기를 개발·생산하겠다고 선회한 셈이다.

북한이 5㎿ 원자로를 재가동하는 실익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원자로를 재가동하면 폐연료봉에서 무기급 플루토늄 추출은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무기급 플루토늄을 통해 핵실험을 강행했고 영변 핵시설 자체도 노후화돼 재정비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북한은 한층 위협적으로 평가되는 고농축우라늄(HEU)을 사용한 핵실험 능력까지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런 상황에서 기존 플루토늄 카드를 다시 꺼내든 것은 지속적인 도발 전략의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일단 현 상황을 엄중한 시기로 인식하고 북한의 동향을 예의주시한다는 방침이다. 외교부 조태영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을 통해 “(북한 발표가) 사실이라면 대단히 유감”이라며 “북한은 그동안의 (비핵화) 합의와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