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 아·태 경제블록화 경쟁] 경제영토 전쟁, ‘東亞 맹주’ 노리는 中에 美 TPP 맞서

입력 2013-04-02 17:31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중시정책(Pivot to Asia)’에 대해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 전략이 국방 부문에만 치우쳤다고 비판해 왔다. 미 브루킹스연구소의 저명한 중국 전문가인 케네스 리버설 선임연구원은 “이러다 보니 이 재균형(rebalancing) 정책이 중국에 대한 봉쇄 전략으로만 비치고 중국이 경제적 실익을 챙기는 가운데 미국은 역내 우방국에 대한 방위 부담만 지는 형국”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 아시아 중시정책의 가장 핵심적 내용은 국방·안보보다도 세계 경제성장을 이끌어가는 아시아·태평양지역과의 ‘경제적 연계 강화’에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러한 경제적 측면의 아시아 중시전략의 핵심 수단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Trans-Pacific Partnership Agreement)이다. 2008년 미국이 참가 의사를 표명한 이후 국제적 관심사로 등장했으나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않던 TPP는 최근 새로운 동력을 얻었다. 지난 15일 참가 의사를 표명한 세계 3대 경제대국 일본이다. 사실상 중국을 배제한 채 진행되는 거대 경제블록에 대해 중국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태평양을 무대로 한 G2(주요 2개국) 간 경제블록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 “중국에 동아시아 경제 맹주 못 내준다”=사실 TPP는 미국이 처음부터 구상한 경제통합체가 아니었다. 싱가포르 뉴질랜드 칠레 브루나이 등 아·태지역 중소 4개국 간 자유무역협정(P-4)으로 2005년 6월 시작됐다. 뉴질랜드의 가입 요청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미국 부시 행정부는 2008년 세계무역기구(WTO) 도하라운드가 사실상 좌초하자 입장을 선회했다. 버락 오바마 차기 행정부는 2009년 11월 교섭 참가를 공식 선언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TPP에 힘을 실은 것은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 등 미국을 배제한 채 중국 주도로 동아시아 경제통합이 빠르게 제도화되는 데 대한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몰두한 사이 중국이 양자 혹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크게 확대했다는 것이다. 강선주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은 동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 감소한 영향력을 회복하고, 중국 주도 하에 진전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협력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는 조치로 TPP를 추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일본 총리는 TPP에서 일본의 지위는 비틀스의 폴 메카트니라며 일본이 참여하지 않으면 TPP는 의미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일본의 참여는 단순히 참여국 1개가 늘어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현재 TPP 협상 참가국은 11개국(미국 호주 멕시코 캐나다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뉴질랜드 칠레 페루 브루나이). 현재 협상 참가국과 일본이 모두 최종 협정에 서명하면 국내총생산(GDP) 합계로 세계경제의 약 40%를 차지하는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지대가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만들어진다. 일본에 앞서 대만도 지난 11일 교섭에 참가할 뜻을 밝혔다. 미국은 이 협정의 기본합의를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의 전략은=중국은 미국 주도의 TPP에 대해 당초부터 불편한 시각을 감추지 않았다. 미국의 TPP 참여가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영향력 회복 시도이자 중국 주도의 역내 경제통합에 대한 대항체라고 인식하고 있다.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웬진유앤 선임연구원은 “많은 중국 학자와 정책담당자들은 TPP 협상에 뛰어든 미국의 주된 배경이 경제적이라기보다 역내 국가들의 중국 경제 의존도를 줄여 중국의 부상을 막겠다는 지정학(geopolitical)적 의도가 더 강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TPP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경우 중국 경제에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한다. 중국과 경쟁관계인 개발도상국 참가국들이 TPP 참여로 특혜를 입을 경우 미국 시장에서 중국의 수출이 크게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아세안 국가와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에 우호적인 정책을 선택하도록 유도해 역내에서 중국이 고립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은 이에 따라 역내 아시아 국가와의 FTA 강화를 통해 TPP의 진전을 더디게 하거나 막는 데 전력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중국이 공을 들이는 두 기제가 한·중·일 FTA와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아르셉)이다.

RCEP은 FTA와 유사한 성격이며 참여국은 아세안 10개국과 아세안의 FTA 파트너 6개국(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이다. RCEP이 체결되면 인구 34억명의 시장을 형성하고 GDP 기준으로 유럽연합(EU)을 능가하는 경제블록이 될 전망이다.

2003년 민간 공동연구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협상에 착수한 한·중·일 FTA는 26일 첫 교섭회의를 열었다. 3국 FTA가 타결되면 2011년 명목 GDP 합계 기준으로 14조3000억 달러 규모의 통합시장으로 부상하게 된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18조 달러), EU(17조6000억 달러)에 이어 3위 규모다. 중국은 이와 함께 이미 발표된 아세안과의 실질협력을 강화하고, 높은 수준의 중·대만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지 매듭지을 가능성이 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