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발찌 소급 적용 핵심 기준은… ‘법원 잣대’는 출소후 자세

입력 2013-04-01 22:21 수정 2013-04-02 00:37


전자발찌 소급 적용을 결정하는 법원 판단의 핵심 기준은 ‘현재 생활’이다. 대상자들이 형을 마친 다음 ‘성실하게’ 생활하고 있다면 소급적용을 기각하고 그렇지 못하면 발부 명령을 내리고 있다. 대상자들의 과거 죄질과 수형생활, 현재 생활환경 및 사회복귀 의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재범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성폭력 전담 재판부(형사26부·29부)는 지난달 전자발찌 소급적용 피청구인들을 모두 법원에 불러들였다. 재판장들은 이들에게 현재 생활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H씨(43)는 2001년 10월 경기도 고양시 한 아파트 비상계단에서 귀가하던 피해자 K씨(24·여)에게 흉기를 들이대 돈을 빼앗고 성폭행한 뒤 “나체 사진을 찍었으니 300만원을 송금하라”고 협박했다. H씨는 징역 7년을 선고받고 2008년 10월 만기 출소했다.

H씨는 출소 후 성실하게 일해 왔다고 평가됐다. 농수산물시장에서 배달 일을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했다. 2년간 저축한 돈으로 ‘남성전용 미용실’을 차려 운영 중이다. 그 사이 아내를 만나 새로 가정을 꾸렸고, 출소 후 4년5개월간 범죄에 연루된 적이 없다. 형사26부는 “모범적 수형생활을 했고 이를 지켜본 교도관이 탄원하고 있는 점도 고려했다”며 전자발찌 소급청구를 기각했다.

전자발찌 소급적용이 무의미한 경우도 있다. 형사29부는 여덟 살 여아를 상대로 유사성행위를 하려다 미수에 그쳐 징역 2년이 선고된 G씨(43)에 대한 소급청구를 기각했다. 중증 정신분열증으로 정신병원 입원치료를 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격리 수용돼야 하기에 전자발찌를 부착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 권모(40)씨에게는 5년간 전자발찌를 착용하라고 소급명령을 내렸다. 권씨는 가정집에 침입해 돈을 빼앗고 홀로 있던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6년을 복역했다. 그러나 2009년 출소 후에도 일정한 거처와 직업 없이 혼자 생활하다 다시 강도치상죄를 저질렀다.

재판부가 이처럼 ‘신중’한 것은 전자발찌 소급적용이 내포한 위헌성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가 전자발찌 소급적용에 합헌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위헌 정족수(6명)에 미치지 못했을 뿐 위헌 의견이 5명으로 합헌 의견(4명)보다 더 많았다.

재판부는 “소급조항에 침해되는 신뢰이익과 그로 인해 실현하려는 공익의 비교형량을 충실히 함으로써 구체적 개별사안에서 위헌적인 법익침해 결과가 초래되지 않도록 해석상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결정문에 적시했다. 소급적용 대상자라고 해서 일률적으로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는 설명이다. 또 지금까지 기각 판결을 받은 피청구인들은 헌재의 위헌심사가 길어지면서 청구 당시 소급기간의 기준이 됐던 3년 이상을 별다른 범죄 없이 살아왔다.

통상 전자발찌 발부 여부는 성폭행 재범 가능성을 가늠하는 ‘한국형 성범죄자 위험성 평가(K-SORAS)’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소급적용 사건을 다룬 재판부는 이 평가가 피청구인들의 출소 후 생활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며 무게를 두지 않았다. H씨와 G씨는 K-SORAS 결과 재범 위험성이 ‘높음’ 수준으로 나왔지만 재판부는 “이 평가 척도는 기존의 대상범죄와 범죄전력 등을 위주로 한 것이어서 피청구인의 출소 이후 생활은 전혀 반영되지 못하는 본질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결정문에서 밝혔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