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 미군병사 도움 받은 화상소녀 60년 세월 건너뛰어 포옹
입력 2013-04-01 21:37 수정 2013-04-01 22:33
“아이고 미국아버지, 반가워요. 찾아줘서 정말 감사해요.”
두 손을 모으고 초조하게 홀 밖을 지켜보던 김연순(72) 할머니가 백발이 성성한 80대 미국인이 들어서자 단상 밑으로 내려가 그를 얼싸 끌어안았다. 남성도 감격스러운 듯 할머니를 포옹했다. “당신을 평생 잊은 적이 없다. 이렇게 만나니 무척 떨리고 행복하다.” 그는 한국전쟁 미국 참전용사 리처드 캐드월러더(82)씨다.
서울 잠실 롯데호텔 에메랄드홀에서 국가보훈처가 주관한 ‘한국전쟁 참전용사와 화상치료소녀’ 상봉식이 1일 열렸다.
캐드월러더씨는 1953년 경기도 화성 매향리 인근 수원 공군기지에 2등 비행사로 근무하던 중 김 할머니를 만났다. 그는 “춥고 바람이 매섭던 어느 겨울 밤 턱부터 허리까지 신체 앞쪽에 심각한 3도 화상을 입은 한 소녀가 어머니 등에 업혀 왔는데, 막사에서 8㎞ 떨어진 마을에서 왔다고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녀는 생명이 위급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는 응급치료를 한 뒤 직접 미 육군 이동외과병원(MASH)에 부탁해 그녀를 입원시켰다.
캐드월러더씨는 전쟁이 끝난 뒤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당시 김 할머니 모녀가 보여준 용기와 가족애를 잊지 못해 그녀를 찾기로 했다고 한다. 국가보훈처가 수소문 끝에 그녀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부인과 딸을 데리고 한걸음에 한국으로 달려왔다.
캐드월러더씨는 상봉식에서 “그녀는 믿을 수 없는 고통과 극도의 고난을 눈물 한 방울, 불평 한 마디 없이 견뎌냈다. 김 할머니 모녀가 보여준 헌신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항상 기억하고 자녀에게 가르쳐 왔다”고 했다. 김 할머니 모녀가 진정한 영웅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딸 돈 길라드씨도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 김 할머니 가족이 보여준 용기와 인내를 배웠다”며 “그녀는 인생의 스승”이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캐드월러더씨를 만나자 다시 12세 시골소녀로 돌아간 듯 부끄러워했다. 김 할머니는 아직도 그를 미국아버지라고 불렀다. 김 할머니는 “그는 평생 감사하며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해준 사람”이라며 “미국아버지가 나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녀들과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혼났다. 어제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했다”고 말했다.
상봉식에서 김 할머니는 캐드월러더씨에게 고운 한복을 선물했다. 그녀는 캐드월러더씨 부부에게 직접 한복을 입혀주고 옷고름도 고쳐줬다. 캐드월러더씨는 60년 전 처음 만남을 생각하며 시계를 선물했다. 이들은 캐드월러더씨가 4일까지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둘이 처음 만난 화성 미군부대와 판문점, 전쟁기념관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