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오명석] 표절은 사회 거짓을 확산시킨다

입력 2013-04-01 21:03


요즈음 우리 사회는 표절 문제로 들끓고 있다. 인사청문회에 선 고위 공직자 후보들, 교수, 스타 강사, 서울의 한 대형교회 목회자 등의 석·박사 학위논문이 표절로 드러나 사회에 큰 파장이 일었을 정도다. 마치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착잡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대다수 국민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 앞에서 우리 모두가 한번 생각해 볼 점이 있다. 표절 문제가 왜 우리 사회에 갑자기 나타난 것인지, 표절한 사람들에 대해 과연 우리가 쉽게 비난하거나 단죄할 수 있는지 하는 점이다. 표절은 남의 글이나 생각을 자기의 것처럼 이용하여 옮기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표절은 글을 쓰는 데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하다.

우리가 생각 없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내려받기도 하고 복제해서 사용하기도 하고, 책 원본을 제본하여 쓰기도 한다. 우리는 왜 이런 일들을 쉽게 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표절을 용납하는 분위기 속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30년 전 대학생들이 커닝(cheating)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공부했다. 부끄럽지만 나도 커닝을 한 기억이 있다. 리포트를 쓸 때도 남의 리포트를 베껴 쓰는 일이 흔했다. 나만 정직하면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상황,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논문을 쓸 때도 이어졌던 것 같다.

그래서 남의 논문을 옮기는 것을 죄책감 없이 여겼다. 물론 그때는 학생들이 논문 쓰는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지금은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아마 많은 개선이 있었으리라 생각되지만 표절시비가 보도되는 것을 보면 아직도 표절 분위기는 가시지 않은 듯하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표절하는 배경도 다양할 것이다. 대학원생이 죄의식 없이 표절하는 경우도 있고, 대학 졸업 후 자기 성장을 위하여 야간대학에 진학하여 논문을 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때 학문적인 연구논문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렇듯 사람마다 정황이 다르고 표절 정도도 다르고 학계마다 표절 기준이 다른데도 표절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한 사람의 일생에 치명타를 주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표절보다 심각한 도덕적 문제들이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 어느 곳에나 거짓과 속임과 청탁과 비리가 만연되어 있다. 그런데 누가 표절자를 정죄할 수 있는가.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표절의 공범자들이다.

필자는 캐나다 토론토신학대학원(TST)에 유학해 처음 에세이(리포트)와 논문 쓰는 법을 엄격하게 배웠다. 그때 비로소 표절이 ‘도적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저자의 글을 몇 줄이라도 그대로 옮겨서는 안 되고 반드시 자기의 언어로 바꾸어야 한다고 배웠다. 물론 인용한 출처는 반드시 밝혀야 했다. 그렇게 에세이를 쓰고 논문을 쓰려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석사과정을 5년 만에 마쳤고 박사과정까지 공부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떳떳하게 생각한다. 부끄러운 것은 진학하지 못했던 점이 아니라 거짓말하고 속이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아 알았기 때문이다.

표절 문제가 나오게 된 것은 우리 사회가 정직한 사회로 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공직자나 학자나 목회자들이 기본적으로 정직해야 한다는 점을 요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정직하고 투명한 사회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오명석(서울 동명교회 목사)